갈등의 정점을 향하던 북한과 남한,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평화모드로 전환되고 있다. 준비가 충분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개최가 합의되었고 이를 위한 사전 회의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고 가정했을 때, 협상에서 북한의 핵심적 요구사항은 체제의 안정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제거일 것이다. 핵의 위험을 벗어나는 것이 최종 목표인 우리나라와 미국으로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의 보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포기에 따르는 경제적 보상이다. 어차피 세상에 공짜는 없고, 협상 테이블에 북한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핵과 미사일 개발이 끝났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에 충분한 대가 없이 북한이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얼마나 대가를 지급할 것이냐에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등을 떠밀 것이고, 북한 핵의 볼모 신세인 우리로서는 전부 또는 상당부분 책임을 거부하기 어렵다.

이 단계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이번 정부에서 설립된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남북러 파이프라인 사업이 그것이다.

남북경제협력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한다면 북한의 자원개발, 특별경제지구 개발, 수자원 및 전력 개발과 공급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중, 러시아 천연가스를 LNG 형태가 아닌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 형태로 공급받는 사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러 파이프라인에 대한 논의는 벌써 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는 중부 러시아로부터 중국을 통해 파이프라인으로 천연가스를 들여오기 위한 사업도 추진되었지만, 정치적인 상황 등의 문제로 인해 포기되었다.

정치적인 문제에 앞서 사업의 경제성부터 보자. 2011년 경 시행된 경제성 분석에 따르면, 파이프라인 수송이 LNG(액화수송)나 CNG(파이프라인에 의한 고압수송) 등 다른 수송방법에 비해 MMBTU 당 가장 저렴한 원가가 들어가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한편,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에 대해 지급하는 통과료를 러시아가 유럽으로 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한 통과료와 동일한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2008년 기준, 1천㎥를 100km 수송하는데 1.6달러의 통과료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산정하면 통과료는 연간 약 1억 2천만 달러 정도다.

하지만, 파이프라인 통과료 연간 약 1천 3백억 원으로 북한과 협상이 되리라는 생각은 순진함 자체이다. 통과료 외에 토지 사용료를 별도로 정해야 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 지불하는 통과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인 대가를 추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경제성과 공정한 대가의 지불이라는 경제논리가 적용되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성 외에도, 러시아 천연가스를 우리가 수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 대상 국가이고, 미국의 트럼프는 러시아의 가스가 아니라 자국의 셰일가스를 수입하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에서 발생한 이중스파이 독살사건 때문에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신냉전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또한, 에너지 안보적인 측면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특히 가스는 우리의 생명줄이다. 추운 겨울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추위에 떨어야 하고, 산업체는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남북러 파이프라인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러시아가 책임질 것이라는 주장도 너무 단편적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을 보면 된다. 또, 이에 대비해서 대규모 저장시설을 준비하자는 주장 또한 모순이다. 결국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자원개발의 실패는 정치의 과도한 개입, 조급성, 위험성 분석능력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남북러 파이프라인을 정치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이와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정부가 먼저 정해야 하는 정책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설정과 에너지 믹스에 대한 확정이다. 그런 다음에 천연가스의 역할과 물량, 수입방법이 논의될 수 있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주장은 순서도 틀렸고, 방법도 틀렸다.

류권홍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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