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민규기자/nomk73@naver.com
일요일 저녁 K본부에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갑자기 우울함이 몰려온다. 바로 다음날은 약도 없다는 ‘월요병’이 발병되기 때문이다.

직장이 성인들의 놀이터같이 즐겁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꿈같은 이야기다. 업무가 많은 바쁜 것도 싫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개선이 안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68%)은 직장 내에서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느끼는 ‘회사 우울증’에 시달린다. 특히 10명 중 9명(87.2%)은 연말에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서의 왕따와 상사의 갑질, 과도한 업무, 열악한 처우, 불합리한 대우 등은 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게 만든다.

하지만 이같이 을 중의 ‘을’로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함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이 돼 주는 곳이 있다. 바로 직장인 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직장 갑질 119’다. 지난해 한 대형병원이 간호사들에게 과도한 노출을 한 복장으로 걸그룹 춤을 강요하는 장기자랑을 시킨 사건이 직장 갑질 119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진호(34) 직장 갑질 119 총괄 스텝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직장 갑질 119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 노민규기자/nomk73@naver.com

-직장 갑질 119의 탄생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바라는 촛불 집회에서 시작됐습니다. 토요일 오후 9시가 넘게 되면 촛불 집회도 중반이 넘어가고 거의 끝날 때인데요. 그 시간에 작업복을 입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토요일인데 이 늦은 시간에 왜 작업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를 할까?’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주말인데도 직장에 나간 근로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 뒤늦게 참여를 하는 것이더라고요. 직장은 민주화가 되질 않았는데,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 참여를 하는 것을 봤고 현장에서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노동단체, 지역사회단체 등과 같이 많은 토론을 하면서 직장인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몇 달 간 공개 토론회를 거쳐 지난해 11월 직장 갑질 119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직장 갑질 119에서 상담을 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변호사와 노무사 등으로, 현재 241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총괄 스텝으로써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면.

“직장 갑질 119는 오픈 카톡과 사안에 따라 메일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고충은 쉬는 날이 없지요. 때문에 저희도 쉬는 날은 없습니다. 오픈 카톡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사안이 심각할 경우에는 메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메일은 보내주신 분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스텝 중에서도 극 소수만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메일을 접수하면 사건과 사안에 따라 변호사나 노무사에게 배분을 하고 있습니다. 오픈 카톡에 올라오는 궁금증에 대해서는 당연히 답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 노민규기자/nomk73@naver.com

-직장 갑질 119의 가입률과 어떤 사건들이 주를 이루고 있나요.

“지난해 11월 출범해 약 80일 정도 지났을 때 체크를 했는데, 1만2천여명 정도 됐습니다. 하루에 150명 정도가 왔다 갔다 한 것이지요. 현재도 100여 명이 꾸준히 다녀가고 있습니다. 직장 갑질 119에 하소연하시는 분들은 상사의 괴롭힘, 부당한 업무, 부당해고 등 다양한 일들이 많습니다. 특히 임금과 관련해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임금이 밀렸다거나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해 줄 생각을 않는 다던가 등이 많습니다. 임금과 관련한 상담의뢰가 전체의 25% 정도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은 직장 상사의 괴롭힘이 20% 정도로 뒤를 잇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주변에 상담을 요청해도 ‘신입 때는 다 그래. 참고하다 보면 지나간다.’ ‘너 같이 안 힘든 사람 어딨냐. 다들 힘든데 버티는 거다.’ 등의 이야기 밖에 못 들으니 직장 갑질 119의 문을 두드립니다. 저희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드리는데요. 대응과 법적인 부분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직장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해 주세요.

“80일 정도 됐을 때 사례가 5천300건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7천 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느 날 회사에서 경리일을 하시는 워킹맘께서 본인의 착오로 물건의 수입과 수출에 차이가 났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회사에 큰 손해가 발생한 것이죠. 그다음부터는 출근을 하면 회의실에 가둬 두기도 하고, 손해가 발생한 수 천만 원을 배상하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원래는 이메일 상담의 경우 3일은 걸리는데, 그분의 사정이 급박해 바로 연락을 하고 답변을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그분이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준비까지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 긴박한 상황에 메일을 보시고는 마음을 돌려먹으셨다고 해서 마음을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또 지난해 겨울, 강원도의 한 병원에서 직원들을 총동원해 병원 뒷산에서 1만 포기의 김장을 시켰다는 이야기, 쉬는 날 직원에게 전화해 닭 모이를 주라고 시켰다거나, 임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서빙을 시킨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또 택배기사분께서 회사 차로 일을 했는데 사직서를 제출하니 사직서 처리되는 날까지 하루 안 나오면 10만 원씩 물린다는 협박, 유명 안마 의자를 만드는 회사에서 퇴직하며 연차·야근 수당을 받기 위해 진정을 넣었더니 2천만 원정도가 나와 회사와 합의 후 1천만 원을 받게 됐는데 다음날 회사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했다는 내용 등 정말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다양한 일에 대한 상담 요청이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노무사와 변호사들께서 스텝으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모이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부분 노동문제 등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고 실제 활동을 해오신 분들입니다. 공적인 활동을 하시면서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고 계시죠. 사실 이분들은 시간이 곧 돈임에도 불구하고 상담 시간에 더 열정을 쏟고 계시죠. 2시간씩 상담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직장 갑질 119의 취지에 공감을 해서 참여를 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리죠. 민간단체이다 보니 재능기부 형식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사실상 여기서 활동하면서 받는 수익은 ‘0’입니다. 또 본업이 있으시다 보니 퇴근 후 활동을 해주시는데요. 답변 메일을 써주시는 시간을 보면 새벽시간에도 많습니다. 또 주말이면 가족들이나 여가생활을 하셔야 하는데, 주말에도 답변을 해주시니 미안한 마음도 있고 대단하시다는 마음이 들죠.”

-직장 갑질이 많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이 왜 일어난다고 보는지요.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한국 사회 직장문화가 왜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권위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직원들을 괴롭히거나 부장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들이 일상화돼 있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그 같은 문화의 문제입니다. 윗사람은 아랬사람한테 당연히 뭘 시켜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법이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것이 문제 입니다. 기본적인 노동법 등을 지키지 않고 이를 구휼해야할 기관은 나서지 않습니다. 장기자랑을 강요한 대형 병원 사례를 보면 국가기관이 기본적인 것들을 잡아주지 않으니, 피해를 본 간호사들이 저희 직장 갑질 119에 이야기를 하고 문제가 되니 이후에 국가기관이 나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각각의 직장을 들여다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곪은 것들이 엄청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자랑 갑질 이야기는 정말 많았습니다. 한 명이 이야기했으면 반신반의했을텐데 80명 넘는 사람들의 제보가 들어와, 심각성을 깨닫고 나서게 됐던 것입니다.”

-직장 갑질을 막기 위해서는 소위 ‘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도 역시 두 가지로 보이는데요. 부당한 일들에 대한 갑질 리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원래 회사생활은 이런 거야’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 하는지 원인을 찾아야 하고 상사의 욕설은 녹음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불법 녹음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본인과 당사자 간은 법적인 문제가 없음으로 증거들을 모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혼자 문제 제기를 하려하지 말고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사례를 보면 혼자 이야기를 했으면, ‘이런 대형병원에서 설마…’라고 생각했을 텐데,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니 문제가 됐고 대응도 하기 쉬웠습니다.”

-갑질을 없애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업무 관계에서는 위나 아래나 존댓말을 쓰고 호칭을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사한테 권한을 많이 주게 되면 갑질은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에 대한 생명줄을 쥐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상사에게 권한이 주어질 때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상사나 팀원은 본인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권리만 행사하고 책임은 없다면 그 또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야근을 했는데도 수당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나중에는 입증할 증거가 없어 못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야근이 끝날 때 시간을 기록하는 등 본인이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셔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갑질이 없는 직장문화를 만드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민규기자/nomk73@naver.com


-직장 갑질 119 등에서 활동을 하시면서 보람된 일과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면.

“직장인들의 부조리 등에 대해 이야기가 정말 많고 엄청 다양합니다. 아르바이트는 4대 보험이 안된다고 대부분 생각하시는데 당연히 됩니다. 하루를 일해도 4대 보험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는 주장을 하셔야 합니다. 요즘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워라밸은 남의 이야기죠. 야근 공화국에서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 앞에서 워라밸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9시 10시에 끝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겠어요. 근로기준법 위반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휴일 수당도 못 받고 근로계약서도 안쓰는 업장도 많고요. 이제는 법과 기본을 지키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정당한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직장 갑질 119는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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