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으로 가다보면 문막IC 부근 좌측에 잘 생긴 산 하나가 보인다. 풍수에서는 탐랑 귀인봉이라고 부르는 건등산(259.5m)이다. 주변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되기 이전 이곳에 살았던 촌로들은 이 산을 옥녀봉이라고 불렀다. 산자락 아래에 여러 능선들이 갈라져 사방으로 뻗어 있어서다. 건등산 정상을 옥녀의 머리, 아래 능선들을 머리카락으로 보면, 옥녀가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옥녀산발(玉女散髮) 형상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필자가 만났던 촌로는 그 아래 마을의 여자들이 유난히 기가 세다는 말을 해주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해서 어떨지 모르겠다.

풍수에서는 지나다가 잘 생긴 산이 보이면 그 산자락 또는 그 산을 바라보는 반대편에서 혈을 찾으라고 하였다. 산자락 아래서 혈을 찾는 것을 구성심혈법, 산을 바라보는 쪽에서 혈을 찾는 것을 안산심혈법이라고 한다. 심혈(尋穴)이란 혈을 찾는다는 뜻이다. 산은 바라보는 곳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인다. 같은 산이라도 어디서 보면 반듯하고 다정하게 보이는데, 다른 곳에서 보면 그 반대로 보일 수 있다. 산이 잘 생겨 보이는 쪽에 좋은 땅이 있는 법이다.

원주시 문막읍은 어디서 보든 건등산이 잘 생겨 보인다. 문막이 살기 좋은 고장이란 의미다. 이곳 산세는 치악산에서 비롯되며 향로봉, 남대봉으로 내려와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부근 가리파고개를 넘는다. 그리고 서북진하여 덕가산과 명봉산을 세운다. 주산은 천마산(317.3m)으로 문막IC 동쪽에 있다. 천마산에서 내려온 맥이 섬강을 만나 멈춘 곳에 문막읍이 위치한다. 읍을 중심으로 동쪽은 명봉산, 서쪽은 관모산, 남쪽은 덕가산, 북쪽은 건등산이 감싸며 보국(분지)을 형성하였다. 보국 안으로는 태기산에서 발원한 섬강이 흐르고 있으며 여주 강천면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문막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많은 반면 나가는 곳은 하나로 수구가 매우 좁다. 이 때문에 큰 비가 내리면 물이 역류한다. 문막의 지명은 수구가 섬강의 물을 막았다는 ‘물막이’에서 유래되었다. 물의 역류는 섬강의 범람을 가져와 상류로부터 흘러 내려온 유기질이 풍부한 토사가 쌓여 일대에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를 이루었다. 넓고 비옥한 평야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촌이었다는 뜻이다. 문막은 강원도 제일의 곡창지대였으며 생산된 쌀은 인근의 여주쌀 만큼 밥맛 좋기로 유명했다.

또한 교통의 중심지로도 유명했다. 지금도 영동고속도로 문막IC와 문막에서 여주를 지나 서울로 가는 자동차전용도로인 42번국도가 있다. 향후 여주-원주간 수도권전철이 문막을 경유하여 지나간다. 도로와 철도교통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강원도 감영이 있는 원주로 가기 위해서는 뱃길을 이용했으며 반드시 문막을 거쳐야 했다. 한양에서 남한강을 따라 여주를 지나 섬강으로 들어서면 문막이다. 문막에서 원주까지는 원주천을 따라 이동했다. 그런데 문막 수구 밖까지는 섬강을 따라 큰 배 운행이 가능했지만 문막 안으로는 수구가 좁고 수심이 얕아 작은 배만 다닐 수 있었다. 자연히 문막 수구 밖은 큰 배와 작은 배가 서로 물건을 옮겨 싣는 물류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 이곳에는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조창인 흥원창이 있었다. 원주뿐만 아니라 강원도 강릉, 삼척, 울진, 평해 등 동해안 지역의 조세도 육로를 통해 이곳까지 와서 조운을 통하여 개경과 한양으로 갔다. 오늘날 물류가 집산(集散)하는 도시가 발전하듯 옛날에도 마찬가지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려면 재물이 있어야 한다. 재물이 있는 곳으로 첫째는 땅이 비옥한 곳이고, 그 다음은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서로 물건을 바꿀 수 있는 곳이다”라고 했다. 문막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지역인 것이다.

원주시는 문막을 서원주역 역세권으로 또 기업도시로 개발계획을 가지고 있다. 2030원주도시기본계획을 보면 개발방향의 주요 기능은 산업·물류이다. 땅도 사람처럼 운명이 있는 것 같다. 문막이 과거 물자의 집산지였던 만큼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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