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9년(선조 22) 11월 12일, 창덕궁 선정전 앞 돌계단 위의 임시 옥좌에 앉은 선조는 우의정 정언신을 비롯해 대사간 이발 등 7명의 대신들을 국문했다. 이때 정언신은 고문 도중 하늘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큰 소리로 “정여립이 어찌 역적이 될 수 있을까!”라며 “거짓으로 음모를 만들어 국왕에게 밀고한 자를 찾아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의정인 자신이 갑작스럽게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일으킨 주범으로 몰린 것에 대한 억울함과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뜻을 국왕 선조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곁에 있던 서인의 우두머리 정철의 말만 믿고 정언신과 해당 관료들 모두에게 유배형을 내렸다. 이 국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유배를 가야했다. 이 사건은 기축년인 1589년에 일어난 옥사라 하여 ‘기축옥사(己丑獄事)’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기축옥사의 주범이라고 불리는 정여립은 정말 선조를 제거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한 것일까?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는 반대파인 서인(西人)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다. 조작된 사건으로 무려 1천 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니 참으로 무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정여립은 우리 역사상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그가 관료생활을 마치고 전주로 내려가서 제자들에게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리요. 요(堯)ㆍ순(舜)ㆍ우(禹)가 임금의 자리를 서로 전하였으니 성인이 아닌가!”라고 했다. 정여립은 봉건왕조 시대에 국왕이 자신의 핏줄에게 왕위를 전하지 않고, 당대 가장 뛰어난 인재를 찾아 국왕의 자리를 전한 선양 제도를 칭찬한 것이다. 가히 혁명가다운 발언이었다.

그는 또한 일본이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조선의 군사력은 형편없었다. 정여립은 전쟁을 방비하기 위해 전주ㆍ금구ㆍ태인 등 고을의 여러 무사들과 공ㆍ사(公私)의 노비 등 계급의 상하를 통하여 계(契)를 조직하고, 그 이름을 대동계(大同契)라고 했다. 대동계는 봉건왕조 시대에 볼 수 없는 특별한 조직이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어떻게 신분을 초월해 모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혁명가의 기질이 있던 정여립의 탁월한 지도력이 없었다면 이는 불가능 한 일이었다.

대동계는 매월 15일에 소집됐고 계원들은 정여립의 집에 모여 활쏘기와 무예 수련을 했다. 대동계의 힘이 커지자 1587년(선조 20) 호남지역에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전주부윤 남언경은 정여립에게 대동계원이 나서 왜구를 물리쳐달라고 요청 할 정도였다. 실제로 무능한 관군이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대동계가 왜구를 물리쳐 백성들을 구했으니 호남의 백성들에게 정여립은 국왕 이상의 지도자로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정여립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이 커지자 그와 연대하는 관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동인(東人) 세력들이었다. 그러자 서인의 영수인 정철은 자신보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선조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거짓으로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만들어내고, 정여립을 포함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그 작업이 무려 3년 동안 이어졌고, 고문을 받거나 사약을 받아 죽은 이들만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조선 역사에서 정철을 대표로 하는 서인 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반대 당파의 아무 죄 없는 이들을 죽인 가장 참혹한 옥사(獄事)로 기록됐다.

그런데 최근 조선 시대에서나 사용되던 ‘옥사’란 말이 다시 나오고 있다. 바로 지난주에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돼 감옥에 갇혔다며 올해가 무술년이기에 ‘무술옥사(戊戌獄事)’라고 지칭했다.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으며 오로지 정권교체의 희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5년간이나 대한민국 수반의 자리에 있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 전 대통령은 110억 원대의 뇌물 수수와 다스 실소유주로 비자금 조성 혐의 등 무려 16가지의 죄목으로 구속된 것이기에 조선 시대 옥사와는 본질 적으로 전혀 다르다. 그가 감옥에 간 것은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수백억 원에 이르는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데 있다.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그의 거짓말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죄 값을 더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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