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엉망인 그 순간, 평생을 지낸 이곳이 갑자기 달라 보였어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요.”

영화 ‘콜럼버스’는 서울에서 온 이방인 남자와 미국 소도시의 토박이 여자가 짧은 기간 주고받은 특별한 교감을 담은 작품이다.

모더니즘 건축이 눈길을 끄는 현대건축의 메카, 콜럼버스. 미국 인디애나주 동남부에 있는 인구 4만여 명의 작은 도시인 이곳에서 약물중독인 어머니와 함게 사는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돌보는 한국어 번역가 ‘진’(존 조)이 만난다. 이들은 고즈넉한 도시 풍경과 모던한 양식의 건축물들을 통해 서로에게서 잠깐의 여유를 느낀다.

케이시는 동네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건축을 사랑한다. 건물마다 좋아하는 순위를 매겨놓고 각각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큰 도시에서 건축을 공부해보고도 싶지만 어머니를 두고 고향을 떠나지 못한다. 케이시는 엘리엘 사리넨, 제임스 폴셱 등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진에게 하나씩 소개하는 건축물 가이드가 된다.

케이시의 인생과 고민이 담긴 설명을 들으면 네모반듯한 건물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진은 케이시와 여러 면에서 반대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케이시와 달리, 진은 아버지와 대화를 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건축이 케이시에게 세상을 보는 창을 제공했다면, 진에게는 상처를 줬다. 그의 아버지는 이민자로서 건축학 분야의 저명인사가 되고, 모더니즘을 자신의 종교로 여기며 신봉했다.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은 케이시와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 노트 속 건축물들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간다.

영화는 진과 케이시의 눈으로 도시 곳곳의 건축물들을 둘러보며 느긋한 힐링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도시의 짧고 깊은 늦여름의 풍경 속에서 고즈넉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콜럼버스는 비디오 에세이스트 한국계 감독인 ‘코고나다’의 첫 장편데뷔작으로 제33회 선댄스영화제 넥스트 부문, 제46회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 경쟁부문에 초청돼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며, 각종 해외 매체 등에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결국 ‘콜럼버스’ 그 자체다. 건축으로 풀어내는 힐링이 국내 관객들에게 어떤 매력으로 비춰질지 기대를 모은다. 19일 개봉.

김수언기자/soounchu@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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