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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 진도로 내려온 단원고생 아버지

우재 아버지 등 3가족 진도서 생활 "다른 가족은 이런 아픔 안 당하길"

2018년 04월 15일 일요일

▲ 팽목항 분향소 돌보는 우재 아버지 고영환(51)씨. 연합

"우재가 어릴 때 축구를 하면 제가 항상 이겨버렸는데 많이 져줄 걸, 못 해준 일만 가슴에 남네요. 다른 가족은 제발 이런 아픔 안겪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아픔의 바다'가 된 진도 팽목항에 내려와 슬픈 바다를 지키는 아버지가 있다.

 2014년 4월 16일 참사로 단원고 2학년이던 아들 우재를 하늘나라로 보낸 아버지고영환(51)씨는 진도에 이사와 지내며 팽목항 임시 분향소를 살피며 일과를 시작한다.

 우재는 참사 5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고씨에게는 우재를 포함해 22명이 차가운 주검으로 바다에서 올라온 그 날이 아직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쯤 지난 후 회사에 복귀했지만 20년 넘게 하던 일이 좀처럼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진도와 안산을 오가다가 2014년 10월 진도로 이사를 내려왔다.

 이후 광화문과 안산, 광주, 전국 강연 활동을 다니면서 마음이 답답할 때는 진도에 칩거하기를 반복했다.

 최근에는 팽목항 분향소와 가족 식당을 지키고 있다.

 전국에 봄이 찾아왔지만 고씨는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보는 일이 괴로워 실내에서만 지내는 날이 많다고 전했다.

 아들과 친구들이 벚꽃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재 또래로 보이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분향소를 찾을 때도 마음이 아려온다.

 고씨는 "(우재가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많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놓고서도 우재는 전자계열 학교에 가고 싶댔는데 내가 그렇게 살아왔던게 싫어서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일을 하라며 단원고에 갔다. 그게 두고두고 미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 우재의 사망신고도 하지 못한 고씨는 "죽은 이유를 알아야 사망신고를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진도에는 고씨 외에도 각각 아들과 딸을 잃은 단원고 학부모 2명이 자리를 잡고살고 있다.

 한 명은 팽목항을 자주 지키다가 최근 진도의 한 식품공장에 취직했고 다른 한 명은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이 떠난 곳과 가장 가까운 하늘 아래서 살고 있다.

 고씨는 "이렇게 한다고 내 새끼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아픈데 다른 가족이 이런 일을 또 당한다면 그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그렇게 안 만들려고 (세월호 가족들이) 돌아다니며 싸우는 것이다.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 "진도에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참사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 주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참사 때 함께 아파해준 이웃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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