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돌아갑니다


평생을 북향집에서 사신 어머니
한낮이 기울어
마루에 길게 비치는 햇살을 무척 좋아하셨지요
지금은 동틀 때부터 붉은 점으로 산마루 걸릴 때까지
밝은 빛 마주하고 계시는군요
항상 ‘그냥 갈래?’하고 먼 산 바라보며
말문을 닫으셨던 어머니
언젠가는 어머니 살 냄새 맡으며
어머니 가슴 밑바닥 고여 있는 이야기들
밤새워 퍼내리라 했지만
이제 돌 벽으로 가슴을 닫으셨군요
아무 때나 찾아가면 계신 줄 알았지
홀로 핏줄 말라가시는 줄 몰랐습니다
두 손 내밀며 귀 기울여 보지만
제 가슴속에 냉기만 쌓여갑니다
건너편 능선 하얗게 피어있는 구절초, 어머니 웃음이군요
어머니, 구절초 향만 가득 품고 그냥 돌아갑니다.





조영실 시인

충남 당진출생, 문파문학을 통해 등단, 수원문학아카데미에서 창작연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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