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을 법으로 바라보면 조닝(zoning)과 도시계획시설이 2대 구성요소가 된다. 조닝은 흔히 말하는 용도지역, 용도지구 및 용도구역 등의 면(面)적 규제와 그에 따르는 건폐율, 용적률 및 행위제한 규정 등을 포함한다. 도시계획시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거래가 될 수 없는 특징을 지닌 공공재인 도시기반시설 등을 정부에서 직접 지정, 설치 및 관리를 위해서 도시관리계획결정을 내린 시설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도시계획시설이 제도화된 것은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에서 23개시설이 도입된 것이 처음이며 이후, 1962년 도시계획법 제정과 1992년 개정을 끝으로 52개 도시계획시설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교통시설, 공간시설, 유통공급시설, 공공문화체육시설, 방재시설, 보건위생시설 등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법)에서 기반시설로 지정하고 있으며, 도시관리계획 결정을 거쳐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시설은 그 시작의 취지는 좋았으나, 현재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상황과 맞지 않게 범위가 너무 광대하고 절차가 복잡하다. 도시계획시설제도는 정부주도로 하여금 국가의 초기 발전단계에서 효율적인 제도로 인식되었다.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던 1970~1980년대에는 도시기반시설만 공급하고 나머지 부동산 개발은 민간에서 주도하였다. 한국의 신도시건설사업은 결국 공공시설(도시기반시설)의 공급이며 이에 민간 자본이 수반되어서 도시가 완성되는 제도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과거의 제도들이 새로운 환경의 걸림돌로 인식되기도 한다. 도시계획시설의 지정 및 결정, 설치 및 건설, 그리고 운영으로 나누어 볼 때 민간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자고속도로, 국도, 철도역사, 터미널, 자동차 정류장 등 교통시설과 대규모 하수관 등은 이미 BTL 등의 제도 형식으로 민간에 의해서 건설 및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일년 예산이 400조가 넘는데 SOC 관련 예산이 5 % 정도로 비중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공간시설에 포함되어 있는 공원은 이미 장기 미집행 시설의 대명사가 되었고 2020년 일몰제로 인하여 과거에 대규모로 지정된 공원들을 아파트 개발과 공원조성을 동시에 허용하여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유통공급시설과 공공문화시설은 결정자체는 공공이지만, 많은 시설의 설치 및 운영은 민간에 위임되고 있다. 보건위생시설 및 방재시설도 비중만 다를 뿐이지 완전하게 공공에 의하여 결정, 설치, 운영되는 시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도시계획시설의 공급 및 설치를 국가가 주도하는 이유는 절차의 정당성 및 공공성, 그리고 결정자체의 신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결정되어 있는 도시계획시설의 양이 너무나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더라도 토지소유권 이전은 자유롭기 때문에, 해제하는 경우에는 현재의 토지소유자에게 특혜가 될 수 있어서 함부로 해제하기가 힘들다. 도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만, 시설을 해제할 경우에는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시설들이 다수 존재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나마 서울에서는 사전협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문제를 풀 제도적 여건을 갖추고 있으나 나머지 지자체는 아직 운영 경험이 부족하다. 그리고 사전협상제도 역시 운영자체가 특혜시비를 없애고 공공기여를 높이는데 있지만, 진행 자체가 느리므로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스마트 시티라는 주제로 도시의 환경이 매우 빠르게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과 재난방지를 위해서는 기존의 방재시설은 소형화 및 스마트화로 넘어가게 될 것이며, 자율주행은 대규모 공공 주차장과 자동차 정류장의 필요성을 낮추게 될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가 부족한 땅을 활용하여 도시발전에 활용하려면 유휴공공시설의 재활용 문제를 빼놓고는 진행할 수 가 없다. 지하철역은 복합화될 것이고 차량기지는 옮겨져야 할 것이며, 오래된 도시계획 시설들은 해제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서울의 캠퍼스타운 조성사업도 대학 교내시설이 담장 테두리 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법적 규제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국토연구원에서 이미 이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 보고서들이 출간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단계이며 장기미집행과 해제절차의 문제점과 일부 시설들에 대한 통폐합 논의가 시작되었을 뿐이고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한 사람의 목소리 보다는 담론 형식으로 접근하여 다수에 의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훈 신한대 대학원 도시기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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