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아수라

미야자와 겐지│읻다│248페이지



‘봄과 아수라’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널리 알려진 ‘은하철도의 밤’을 쓴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의 생전에 출판됐던 유일한 시집이다. ‘심상 스케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안에 실린 예순아홉 편의 시는 시인의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여러가지 생각,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경 등을 보이는 대로 그려낸 그림과 같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서술은 마치 순간적인 크로키처럼 바람에 흩날리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봄과 아수라’에서 겐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혹은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사이에 작용하는 현상을 관찰해 언어적 스케치로 펼쳐 보인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은 그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 자연 속을 뛰놀며 식물과 곤충 채집, 특히 광물 채집에 대한 관심을 크게 키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면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집을 나와 자신이 어린 시절 보았던 자연, 그 속에서 공생하던 동식물의 모습, 서로 한데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첼로 켜는 고슈’ ‘도토리와 살쾡이’ ‘사슴 춤의 기원’ 등의 동화로 옮겼다.

이 책의 시에는 환상이 가득한 동화를 썼던 겐지의 동화작가로서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발휘된 한편, 당시 하나마키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관심을 뒀던 음악과 종교, 화학과 지질학과 기상학과 새로운 농업 기술 등이 그의 예술성과 결합, 섬세하고 풍부한 어휘로 묘사돼 단어 하나하나 곱씹는 재미가 있다.

행복하고 환상적인 그의 작품에도 현실에 대한 고민과 슬픔이 내재돼 있다.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제국주의 때문에 점차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일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겐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그에 따른 심경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꾸준히 자신의 문체와 표현을 발전시키며 짧은 생애 동안 총 100여 편의 동화와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사후 60년이 지난 지금은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작가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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