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국구(國舅: 장인)인 연흥부원군 김제남(1562~1613)의 묘는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산67-1번지에 위치한다. 문막IC에서 건등산(259.5m) 북쪽으로 안창대교를 건너면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흥법사지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 김제남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란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인물의 묘 입구에 세우는 비석이다. 죽은 사람의 집안 내력과 일생업적, 후손들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묘지 답사 때 그 사람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 신도비를 보는 것이 우선이다.

신도비는 가문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 웅장하게 세운다. 비문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에게 부탁하여 짓는데 비석 전면에 누구의 찬(撰)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글씨는 당대의 최고 명필에게 부탁하는데 서(書)라고 쓰여 있다. 비석 제목은 제일 위에 전서체로 쓴다. 이 역시 전서를 잘 쓰는 사람에게 부탁하는데 누구의 전(篆)이라고 쓰여 있다. 김제남의 신도비는 월사 이정구, 계곡 장유, 택당 이식과 함께 한문학의 4대가로 알려진 상촌 신흠이 찬했다. 글씨는 당대 명필인 남파 심열이 섰고, 전서체의 비석 제목은 우의정으로 시와 글씨에 뛰어난 김상용이 섰다.



신도비에서 100m 정도 가면 도로 건너편에 의민공 제실이 나온다. 의민은 김제남의 시호로 왕과 왕비, 종친, 정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문무관이 죽은 뒤에 주어진다. 김제남의 묘는 제실 뒤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 있다. 닭둥지처럼 생긴 와혈로 편안한 자리다. 앞의 안산은 옥녀봉으로 알려진 건등산이다. 묘가 좋은데 왜 딸과 외손자가 폐모살제의 화를 입었을까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의문은 풀렸다. 본래는 경기도 양주 서산에 묻혔으나 인조반정 이후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김제남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본관은 연안으로 증조부는 영의정 김전, 조부는 함종현령 김안도, 아버지는 충좌위부사정 김오,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권상의 딸인 안동권씨다. 세도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24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의금부도사·공조좌랑·연천현감을 지내다 36세 때 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인 선조 35년(1602) 둘째 딸이 선조의 계비로 뽑힘으로써 영돈령부사에 연흥부원군으로 봉해졌다.

선조는 부인 8명에 14남11녀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첫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의인왕후가 세상을 뜨자 선조는 50세 나이에 19살의 김제남 딸을 왕비(인목왕후)로 맞아들인다. 세자인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린 나이였다. 4년 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는데 선조에게는 왕비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적자다. 선조는 영창대군을 총애하여 광해군을 폐하고 세자로 책봉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조가 59세로 재위 41년만인 160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선조는 숨을 거두기 전 일부 신하들을 불러놓고 영창대군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이 말은 오히려 영창대군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다. 제15대 왕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 했던 자들을 제거했다. 마침 문경새재에서 일어난 권력가 서자들의 화적질을 김제남 등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으로 조작하였다. 결국 김제남은 사사되었고 8살의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폐하여 강화에 보내 가둔 다음 방에 불을 때서 죽게 하였다. 1616년에는 인목대비마저 서인으로 폐하였다. 이른바 폐모살제다. 이때 김제남은 또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김제남은 신원이 복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묘를 지금의 자리로 이장한 후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이곳 산맥은 오대산에서부터 양평 두물머리까지 이어진 한강기맥 금물산에서 비롯된다. 당산(545.6m)과 수리봉(427m), 간현봉(386.7m)을 조종산으로 하며, 묘는 용맥이 섬강을 만나 멈춘 곳에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와 달리 편안한 곳에서 영면을 취하는 모습이다. 묘지 이장처럼 산 사람도 생활이 힘들 때는 집을 이사해보기 바란다. 쉽게 해결 될 수도 있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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