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7살 연하라고 주변에 밝히는 게 스트레스다. 깜짝 놀라면서 '능력도 좋다'고 부러워하거나 '너 그러다 결혼 못 한다'며 설교를 늘어놓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숨기는 경우가 많다."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하는 진 모(34)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친구와 만난 지 1년 가까이 됐다는 진 씨는 "아직도 직장 동료들은 남자친구가 없는 줄 안다"며 "연상녀와 연하남의 결혼이 보편화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를 바라보는 '편견'은 여전히 남아있는 게 사실"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진 씨는 "솔직히 나조차도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남자친구 부모님이 나를 반대하실 거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적령기라 우리 집에서는 결혼 언제 하느냐고 성화지만 '만나는 사람도 없고, 생각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주인공 손예진은 35세 미혼 여성으로 등장한다. 4살 연하의 친구 동생인 정해인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주변에는 이를 알리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의 반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직면하게 되는 부정적인 반응은 크다. 가족들의 반대,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편견 등으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최근 연상녀, 연하남 부부가 증가하는 것과 사뭇 대조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결혼에 대한 다양성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여자 연상 부부 비중 증가…"누나가 더 좋아요”

통계청 '2017년 혼인, 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초혼 부부 중 남자 연상 부부는 67.2%, 여자 연상 부부는 16.9%, 동갑 부부는 15.9%를 차지했다. 남자 연상 부부 비중은 전년보다 0.5%포인트 감소했지만, 여자 연상 부부 비중은 전년보다 0.5%포인트 늘었다.


비중은 매년 증가 추세다. 여자가 연상이고 남자가 연하인 '연상연하 커플'의 혼인 건수는 지난해 3만4천800건을 기록했다. 동갑내기 결혼 3만2천800건을 뛰어넘는 수치다.

연상녀, 연하남 부부의 나이 차이를 살펴보면, 여자가 1~2살 많은 경우가 2만4천100건으로 가장 많았다. 여자가 3~5세 많은 경우는 8천300건, 6~9세 많은 커플은 2천 건, 여자가 10세 이상 많은 경우도 400건이었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2013년 전국 남녀 대학생 2천90명을 대상으로 '연상연하 커플의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들은 연상의 여성을 통해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먼저 기대며 위로 받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연하녀보다 연상녀가 더 좋은 이유'에 대해 '세심하게 나를 챙겨줄 것 같다'(23.2%)와 '힘들 때 먼저 기댈 수 있을 것 같다'(22.6%)가 1,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내 부담이 덜할 것 같다'(17.5%), '연하녀보다 대하기 편할 것 같다'(14%)가 뒤를 이었다.

◇ 여성연상 결혼 증가…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

그렇다면 연상녀, 연하남 결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낙일 연구원은 '우리나라 여성연상 결혼의 경제적 요인' 논문에서 "미국 언론매체에서는 여성연상혼이 증가한 배경으로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과 함께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점을 꼽는다"고 설명했다.

일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연상 연애나 결혼을 묘사할 때에 여성을 고학력 또는 전문직 종사자로 표현하는 데에도 이와 같은 논리가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결혼 상대로서 남성 연령이 여성 연령보다 많아야 한다는 사회규범이 더는 결혼적령기 세대에게 수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11살 연하와 결혼한 미술강사 김 모(36) 씨는 "서른 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남자를 의지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처음에 유아 체육강사였던 남자친구가 고백했을 때 그런 생각들이 조금 깔려 있어서 그랬는지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연상 결혼이 증가하는 시점과 맞물려 여성의 사회진출도 늘었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고용률은 50.2%로 전년 49.9%에 비해 0.3% 포인트 증가했다. 임금근로자 비중은 77.2%로 전년보다 0.8% 포인트 증가했고 남성(72.5%)보다 4.7% 포인트 높았다.

성 연구원은 논문에서 "여성연상혼은 여성의 교육 수준과 직종(소득)이 남성보다 높을 때 더 많이 발생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남성의 소득이 여성보다 100만 원 더 적을 경우에 여성연상혼 확률은 0.7%가량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가 결혼 당사자의 소득수준이 아닌 직종별 월급여총액이라는 대표임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측정오차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부모님 반대와 사회적인 편견 여전

"5살 어린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집에 말씀드리니 우리 부모님도 반대했지만, 남자친구 쪽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셨다. 어머님은 남자친구가 과거에 만났던 연하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걔가 더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엄마는 '네가 마음에 안 드나 봐' 그냥 그렇게 말을 하는데, 엄마도 나도 상처를 받았다.”

유치원 교사인 이 모(32) 씨가 '연상녀·연하남 부부의 결혼 결정 과정'(이세란) 논문을 통해 털어놓은 말이다.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회사원 최모(32)씨는 "부모님은 내가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길 원해서 '네가 그 친구랑 결혼하면 나는 너를 안 본다' '너는 결혼하지 말고 그냥 평생 노처녀로 살아'라고 하더라"며 "부모님에게 연하남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연상녀, 연하남이 맞닥뜨리는 부정적인 시선은 크다. 연상녀들은 연하남과의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양가 부모님의 반대와 연하남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영향을 받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괴로움과 죄책감도 느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혼남녀 59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단점으로 '부모와 친지의 반대'가 29.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여성 연령으로 인한 출산의 어려움'(20.7%), '남성의 경제적 스트레스'(18.6%), '남녀 역할 혼동 및 세대 차이'(16.9%) 등의 순이었다.

주변의 편견도 문제다. 회사원 박 모(32) 씨는 "회사에서 연하랑 사귄다고 하면 '연하 킬러야?'라는 말을 하거나 '누구누구 씨는 어린 남자 좋아해' 이런 식으로 툭툭 내뱉어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또 남자친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 '어린애랑 노니까 좋아?'라 거나 '오늘도 애기 만나러 가?' 이런 식으로 많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세란 씨는 논문에서 "보편적으로 배우자 선택에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연령, 교육, 수입 등과 같은 사회, 경제적 수준이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유연성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연구결과 연상녀와 연하남의 관계에 가족과 사회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배우자 선택 과정에서 부모나 가족의 영향보다는 결혼 당사자의 결정이 확대되는 개인의 자율성 확대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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