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3년 전 일이다. 우리 학교에 교내 교수만을 대상으로 한 야구팀이 만들어졌다. 나도 평소 야구를 좋아하여 가입을 했다. 우리는 매주 수요일날 강의를 마치고 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전문 코치를 초빙해서 타격, 수비, 주루 연습을 하기도 했다. 또 방학이면 체육관에 모여서 하계, 동계 훈련도 했다. 힘들면서도 재미있었다. 어느 정도 조직력이 갖추어지자 직장인 리그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때부터는 좀더 강도있는 훈련이 필요해서 피칭머신도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실내연습장을 찾아가 타격 훈련을 하는 분도 있었다. 드디어 리그가 시작되었다. 우리팀은 전체 회원이 15명 정도였는데, 실제 경기에 뛸 수 있는 사람은 12명 정도 밖에 안됐다. 나이도 대부분이 50대였고, 젊은 축도 40대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첫 게임을 뛰고 나자 벌써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너 게임을 치르고 나니 거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상자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뛸 사람이 부족해서 더 이상 시합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교내 야구팀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야구는 우리 나이에 맞는 운동이 아니었다.

나는 요즘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을 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낼지 걱정이다. 평생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정년을 하고 나면 책과는 담을 쌓고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가 고민이다.

한 20여 년 전쯤의 일이다. 나는 그때 안양의 한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 아파트에는 유달리 노인분들이 많이 살았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는 놀이터가 있었고, 그 한쪽에 작은 정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한 오전 11시 즈음이 되면 그 정자는 어김없이 할머니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아파트 단지에 따로 노인정이 없다 보니 할머니들이 화투를 치기 위해 거기에 모이는 것이었다. 할머니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모여 내기 화투를 쳤다. 가끔은 돈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다. 아마 그분들 중 상당수는 화투 중독자가 아니었나 싶다.

요즘 서울에는 동네마다 잘 지어진 문화센터가 하나씩 있다. 이 공간의 주인 또한 동네의 노인분들이다. 문화센터의 요가 교실이나 노래 교실을 비롯하여 중국어나 영어, 일본어 강좌에는 노인분들로 가득하다. 대부분이 건강 관리나 취미 생활을 위해서 혹은 사교를 위해서 다니시는 것이다. 가끔 이런 노인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의 모습이 얼마 뒤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나는 몇 해 전 캐나다에서 1년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캐나다는 이민 국가라서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교실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서 영어를 가르쳐 주는 대부분의 강사가 노인분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노인분들이 보수적인 영어를 구사하다 보니 영어에 서툰 사람들에게는 젊은이보다 노인분들이 제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은퇴를 하면 대부분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 노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한 나라의 국격은 그 나라 노인들의 삶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하나 있는데, 학교가 조금 멀어서 아침마다 라이딩을 해준다. 하루는 차 안에서 ‘사람들이 100살을 사는 시대인데 왜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에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딴에는 맞는 소리이다. 인간의 수명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 일하다가 은퇴해서 여생을 보내는 시대도 저물고 있다. 계속해서 배우고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쉬고 싶은데 말이다.

김창원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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