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으로 묻혀 버린 느낌이지만 ‘드루 킹’ 댓글 조작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드루 킹’이라는 뜻도 알 수 없는 이들의 댓글 조작행위들이 매우 조직적이었다는 점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고 충격적일 것이다. 어찌 보면 2016년 말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이보다 순진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더구나 지난 정부시절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드루 킹’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인터넷 공간은 온통 조작된 여론이 지배하는 혼탁한 공간으로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부와 정치인 모두가 인터넷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생각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번 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인터넷 댓글에 붙은 ‘공감 클릭’나 ‘좋아요’ 숫자가 과연 여론을 조성하는데 효과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다수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여론을 감지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사 본문만 보고 댓글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댓글이나 공감 숫자는 생각보다 여론형성에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은 많은 연구결과들이 검증해 주고 있다. 다수의 분위기에 동조하는 ‘부화뇌동 효과(bandwagon effect)’는 실제 태도형성이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열세자를 지지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와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선거운동기간은 물론이고 투표당일까지도 여론조사 발표를 허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나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확한 여론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폐쇄적 선거환경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특히 투표 6일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발표를 금지하는 현행법은 이른바 ‘깜깜이 투표’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합법여부를 불문하고 ‘댓글 조작(?)’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지면 개만도 못하다는, 그래서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는 대한민국 선거판의 특성상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왜 인터넷 포털들은 댓글이나 공감 클릭 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도리어 ‘많이 읽은 기사’ ‘댓글 많은 기사’ 같은 제목으로 기사의 중요도 혹은 호감도를 평가 배열하는 이른바 ‘댓글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 언론이 기자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뉴스를 거르고 배열하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했다면, 포털들은 클릭수를 기준으로 게이트 키핑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뉴스를 직접 제작하지 않으므로 언론사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어떤 근거로든 뉴스를 게이트키핑을 한다는 것은 언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고 여기에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더구나 게이트 키핑의 근거가 댓글이나 호감도라면 이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임에 틀림없다. 만약 그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지금처럼 언론사들의 뉴스를 기반으로 이용자들의 끌어들여 광고수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 옳다. 일부에서 구글처럼 뉴스를 별도로 편집 제공하지 않는 ‘아웃링크(out link)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국정원이나 ‘드루킹’의 댓글조작사건은 그 주체가 정권이냐 민간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대의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중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가장 주된 공범은 올바른 여론 공표를 제한하고 있는 법제도이고, 그 다음 공범은 이를 악용하는 정치권과 정치인들 그리고 또 다른 공범은 이를 이용해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인터넷 포털들일 것이다. 결국 이 같은 범죄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를 창궐하게 만든 법제도·정치·인터넷에 대한 총체적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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