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에서 한국산 첨단 IT제품을 수입·유통하는 지인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유럽시장에 출시한 이 제품의 반응이 좋으니 정식으로 공급해 달라는 오퍼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한국산 원산지증명서가 필요하다며, 원산지증명서가 없으면 14%의 고율관세가 부과되어 남는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해당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중소기업인데다 FTA 무역실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이어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았다. 아쉽게도 유럽(EU)으로 수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2011.7.1부터 발효된 한-EU FTA가 적용되어 무관세 특혜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산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FTA 특혜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조건과 절차가 뒤따른다. 그러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특혜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먼저 수출하기 전에 반드시 세관당국의 원산지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고, 인증을 받은 후에야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 한-EU FTA에서는 6천 유로를 초과하는 수출품에 대해서는 세관당국에서 원산지인증을 획득한 수출자만이 FTA 특혜관세 적용에 필요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를 ‘원산지인증수출자제도’라고 한다.

인증수출자는 해당 업체가 생산·수출하는 모든 물품에 대해 원산지를 인증해 주는 ‘업체별 원산지인증수출자’와 특정 품목에 한해서 원산지를 인증해주는 ‘품목별 원산지인증수출자’로 구분된다. 생산품목이 다양하고 수출이 빈번한 업체는 업체별 인증이 편리하다. 하지만 원산지인증을 받는데 필요한 요건과 구비서류가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이 이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이에 반해 품목별 인증은 수출하는 해당 품목에 대해 인증을 신청하는 것이므로 업체별 인증절차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 다만, 새로운 수출품목이 생길 때마다 인증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업체별 인증보다 품목별 인증이 훨씬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세관당국에서 원산지인증을 받은 업체가 4천205개였는데, 이 중 업체별 인증을 받은 업체는 140개로 1.0%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품목별 인증을 받았다.

원산지 인증은 신청부터 인증서를 교부받기까지 최소한 20일이 소요된다. 사전에 증빙자료를 준비하고, 원산지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준비기간이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으로 수출하려는 중소기업은 적어도 2~3달 정도의 충분한 기간을 두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원산지 인증을 받으면 5년간 유효기간이 주어진다. 인증수출자에 대해서는 세관인증번호가 부여되며, 세관인증번호를 사용하여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된다. 원산지증명서는 특별한 양식이 필요하지는 않고, 송품장 또는 포장명세서와 같은 상업서류 상에 원산지 신고문안을 기재하는 간당한 방식으로 작성할 수 있다.

한-EU FTA가 시행된지 벌써 8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경기도 지역 중소기업은 여전히 FTA 활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해 FTA 상대국으로 수출된 물품 중 70.0%가 FTA 특혜관세 혜택을 누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경기지역의 FTA 수출활용률은 50.5%에 불과하여 전국 17개 지자체 중 최하위 그룹에 머물렀다. 경기도 지역은 스타트업 중소기업이 계속 출현되고 있고, 다양한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경쟁력 있게 해외 수출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도 FTA 활용이 필수적이다. FTA 무역시대, 해외 수출시장 개척은 FTA 활용부터 시작할 것을 권고한다.

김석오 수원세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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