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세계 결핵의 날”을 맞아 한국의 의료관련 단체가 모여 한반도 결핵퇴치를 위해 ‘코리아 결핵퇴치연맹’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연맹의 공동대표로 선임된 인요한 선생은 14만 명에 이르는 북한의 결핵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통일한국을 위한 최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었다.

지난 2011년 3월에는 백두산도 활화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북한이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남북 전문가 회담을 하자는 제의를 해 오기도 했다. 이때 우리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 파주의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남북화산문제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 토론을 가진 바 있었다. 마침 당시에는 일본이 지진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여서 여간 보기 좋은 토론장이 아니었다.

최근 북핵문제를 빌미로 남북간의 대화의 물꼬는 일단 터졌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자연재난에 대한 대처방안과 함께 결핵퇴치 방안 같은 문제도 앞으로 순차적으로 논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우리는 역사공동체이자 민족공동체이고 환경공동체다. 그러기에 영토의 문제에서부터 환경의 문제에 이르기 까지 공동으로 연구해야할 과제는 과장해서 말하면 모래알만큼이나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와 영토문제 내지 재난과 건강에 대한 공동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민족적인 과업이 아닐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문제부터가 바로 그러한 문제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역사가 중국에 의해 왜곡되고 변조되고 있는지가 벌써 20여년! 이 문제에 대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영국 아서왕의 카멜롯성(城)을 독일의 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의외로 영국의 더 타임스(The Times) 기자였다. 탄복할 만큼의 기발한 비유다. 영국의 언론마저 고구려가 우리 땅이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남북이 함께 공동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저항의식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북한 학자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의 조희승 교수는 중국역사책 어느 것을 보더라도 고구려는 조선사에 속하는 나라라고 되어 있는데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전(古典)들을 모조리 부정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왜(倭: 일본)나 북적(北狄 : 대략 지금의 몽골), 서융(西戎:대략 지금의 티베트), 남만(南蠻 : 대략 지금의 베트남)도 중국사에 속하는 것이냐고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고구려역사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우리와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라면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남북의 공동노력은 아주 손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간도문제 역시 남북이 함께 연구해야할 장기과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범정부적으로 동북공정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어쩌면 훗날에 생길는지도 모르는 간도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훗날에 대비하기 위서라도 간도문제를 비롯한 과거의 우리영토에 대해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간도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고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영토였다. 그런 지역에 대한 공동연구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한국역사에 대한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가 훼손하는 것이고 아울러 통일한국의 영토에 대한 포기선언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독도 역시 자기네들의 영토라고 잠꼬대처럼 되뇌이고 있는 일본에 대해 북한이 앞장서서 “독도를 일본의 죽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중국의 만리장성이 일본의 동북지역에 있는 산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라고 반박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다. 역사문제나 영토문제나 환경문제나 재난문제에 있어서는 지금부터라도 남북이 함께 공동대응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쁜데 무슨 딴소리냐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북핵문제도 이러한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해서 하는 얘기다.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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