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왕 중 개혁을 부르짖다가 끝내 실패한 국왕이 있다. 바로 ‘중종(中宗)’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횡포로 신하들이 일으킨 반정(反正) 때문에 국왕이 된 인물이다. 그래서 중종은 연산시대의 적폐 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비록 자신의 능력으로 국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개혁을 추진해 조선 국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산림(山林) 세력인 조광조를 등장시켰다. 국가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적 인사들을 대거 등용해 이들로 하여금 잘못된 제도와 풍속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조광조는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의 횡포를 차단하는 것을 개혁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들이 비록 중종반정의 주역으로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가차 없이 처단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과거 시험만으로 인재를 뽑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비록 지방에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학문적 소양이 있고 백성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등용했다.

중종은 또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언로(言路)’를 적극 개방했다. 국왕의 허물을 직접 이야기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대간(大諫)의 역할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중종은 더욱더 개혁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중종과 조광조를 비롯한 개혁세력들의 노력 덕분에 그동안 조정의 권력자들과 연계해 독점권을 가지고 상행위를 해 막대한 재물을 축적했던 세력들은 위축됐고, 백성들은 절로 신이 났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쁨도 잠시, 개혁을 추진하던 중종은 곧 변심하고 말았다. 어느덧 국왕의 권위만을 찾게 되고, 자신에게 도덕적 왕도정치만을 강요하는 조광조와 개혁세력들이 귀찮아진 것이다. 중종은 술 마시며 궁녀들과 놀고, 멀리 사냥도 나가고 싶은데 개혁세력들은 그런 것을 일절 하지 말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왕은 본인인데 자꾸 신하들이 간섭을 하니 짜증나는 것을 넘어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부터 자신이 ‘적폐’라고 부르던 세력들이 거꾸로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도정치를 강요하지도 않고 온갖 감언이설로 중종을 감복시켰고, 개혁의 중심인 조광조를 계속해서 비난했다. 마침내 중종은 조광조와 그를 따르던 개혁세력들 모두를 관직에서 내쫓고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곧 이어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렸다. 이로써 중종의 개혁은 끝이 나고 다시 훈구파인 권문세족들의 세상이 됐다. 잠시나마 개혁정책으로 기뻐하던 조선의 백성들은 다시금 힘 있고 돈 있는 양반사대부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 것이다.

그런면에서 개혁을 올곧게 추진한 이는 바로 ‘정조(正祖)’였다. 정조는 자신이 해야 할 개혁의 방향성을 정확히 잡아냈고, 그 방향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백성이라면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위해 정조는 당파를 초월해 개혁에 동참하는 인물들을 대거 등용, 늘 이들과 토론하며 정책을 만들고 개혁을 추진했다. 이것이 바로 정조와 중종의 다른 모습이다. 안일했던 중종의 개혁은 실패했지만 끊임 없이 노력했던 정조의 개혁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정조가 개혁군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통령이기에 온 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너무도 크다. 특히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취임할 때와 거의 같은 77%의 지지율을 보이는 대통령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의 방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 역시 중종처럼 개혁을 실패하지 않으려면 개혁인사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 등용하고, 민심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만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북의 평화가 찾아오고 지역과 계층 간의 차별이 사라지고, 복지가 꽃피는 나라! 그런 나라를 국민들이 원하고 있음을 문 대통령은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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