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서면은 박사마을로 유명하다. 전북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과 함께 3대 박사마을로 꼽는다. 2천 가구, 4천 명 정도의 인구가 사는 작은 면단위에 박사가 무려 155명(2018년 5월 현재)이나 배출되었다. 평균 열세 집에 한집 꼴이다. 단위 인구 당 박사 수로는 전국 최고다. 그것도 금산리, 신매리, 방동리, 서상리, 현암리, 월송리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박사가 많이 배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부모들의 교육열을 꼽는다. 서면은 의암호가 가로막고 있어 육지 속 섬이나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와 산나물을 광주리에 담아 춘천 시내에 내다 팔며 자녀들을 공부시켰다. 자식들만은 보다 더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뒷바라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당시 춘천 시내로 가는 교통수단은 나룻배였다. 이른 아침이면 밭작물을 팔러 나가는 어머니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한 배에 탔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고된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타 지역 부모들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부모들의 교육열로 보기는 힘들다.

두 번째는 배를 타고 통학하면서 선배가 자연스럽게 멘토가 되어서 후배들을 잘 이끈 결과라고 해석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열차나 버스로 다를 뿐이지, 다른 지역에서도 선배와 후배가 같이 다녔다. 비단 이 마을만 멘토가 되는 선배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타 지역과 차별화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다. 조선 효종·경종 때 성리학자인 삼연 김창흡(1653~1722)이 현암리 백운동에 머무르며 후학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는 안동김씨로 좌의정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이고,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며, 영의정 김창집과 예조판서 김창협의 동생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사사되자 산중에 은거하며 지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지역민들이 강학계를 결성하고 백운동에 서원 설립을 추진하였다. 비록 서원 설립은 실패했으나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활동은 지속되었다. 이곳의 학문이 얼마나 높았는지 인근 지역의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기 전 먼저 이곳에서 모의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와 학문적 전통이 박사를 많이 배출한 배경이라고 본다.

네 번째는 풍수지리적인 요인이다. 서면은 서쪽으로 가덕산(858m), 북배산(869.6m), 계관산(737m)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쪽으로는 북한강과 의암호가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특히 박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 금산리, 신매리, 방동리, 서상리, 현암리, 월송리 지역은 강과 호수가 활처럼 환포하고 있다. 이들 마을에서 보면 춘천 시내의 봉의산(301m)을 비롯한 여러 산봉우리들이 반듯반듯하다.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이겠지만 귀인봉이나 문필봉, 또는 일자문성처럼 보인다. 이러한 산세는 귀인과 문장가를 상징하므로 박사 배출과 무관하지 않다.


금산리는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마을로 금산초등학교가 소재한다. 학교 뒤편 도로 건너편에는 박사 선양탑이 있다. 1999년 주민들과 관계기관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학위 취득자들의 성명, 연도, 학위취득대학, 전공, 출신지를 순서대로 새겨놓았다. 1번은 송병득 박사로 1963년, 미국 로마린다대, 의학(내과), 금산리로 적혀 있다. 3번은 한승수 국무총리인데 금산리 출신으로 장군봉 아래 산맥 끝자락에 생가가 있다. 이곳이 박사마을이라 해서 꼭 박사만 배출된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안내 자료에 의하면 국회의원, 산림청장, 대학총장을 비롯하여 교장급 이상 교육자 110여명, 5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90여명이나 배출되었다.

각 마을에서 보면 공통점이 있다. 순한 산들이 사방을 감싸며 보국을 형성하였고, 들판은 넓고 평탄하며 양지바르다는 점이다. 인물을 배출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이 때문에 박사마을은 젊은 신혼부부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마을의 정기를 받아 좋은 자녀를 갖기 위한 것인데 지혜로운 부부들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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