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첫날부터 끝날 까지 기념일로 가득하다. 근로자의 날(1)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이자 입하(5), 어버이 날(8), 유권자의 날(10), 입양의 날(11), 자동차의 날(12), 로즈 데이(14), 스승의 날(15), 민주화운동 기념일(18), 발명의 날(19), 세계인의 날(20), 부부의 날, 성년의 날이자 소만(21), 석가탄신일이자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22), 역사의 격랑 속을 살아간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의 생일이자 방재의 날(25), 바다의 날이자 세계 금연의 날(31)까지 모두 5월에 집중되어 있다. 태양의 황도 상 위치에 따라 계절을 구분하는 24절기로 볼 때 소만(小滿)이 있는 5월은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 달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황도는 태양이 지나는 길이란 뜻으로 지구가 태양을 공전할 때 마치 태양이 지구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가하면 2018년은 유난히 과학과 관련 기념해야 할 일들이 많은 해다. ‘운동량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리한 세계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Amalie Emmy Noether)의 탄생 100주년,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인기 있는 천재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탄생 100주년, 태양 스펙트럼에서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밝은 선을 발견하고 그것이 역시 알려지지 않았던 원소인 헬륨으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알아낸 헬륨발견 150주년, 손을 씻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을 질병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한 멸균법 창안자 젬멜바이스(Ignaz Semmelweis) 탄생 200주년, 물리학 및 공학의 많은 영역에서 폭넓게 응용되는 열역학 법칙을 창안한 장 푸리에(Jean Fourier) 탄생 250주년, 생물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실험을 진행한지 35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원래 기념일은 한 지역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물 또는 사건에 대해 기념할 목적으로 지정된 날이다. 국가적 기념일은 국가적 경사나 역사적 사건을 온 국민이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 주관하는데 총 45개의 기념일 중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은 국경일로 지킨다. 그 외 상업적인 배경 하에 주로 젊은 연인들을 대상으로 매월 14일마다 이어지는 기념일도 있다. 연인들의 기념일이 적힌 다이어리를 주고받는 다이어리 데이를 시작으로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블랙 데이, 로즈 데이, 키스 데이, 허그 데이 등이 그것이다. 집집마다 본인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 자녀 그리고 친지들의 기념일까지 합치면 연중 기념일 아닌 날이 며칠 될는지 모른다. 게다가 타와라 마치의 ‘샐러드 기념일’까지 친다면.…

왕조시대 기념일은 주로 왕이나 왕비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탄생, 결혼, 즉위 등을 축하하려는 목적으로 오늘날의 국경일 또는 기념일이 제정되었다. 지금도 왕과 여왕이 있는 영국과 일본 등에서는 그런 기념일이 많다. 누군가 기념일은 다 슬픈 날이라 했다. 기념일들 속에 우리의 결핍과 욕망이 드러난단다. 근로자의 날엔 임시직 근로자들과 청년실업의 그림자가, 어버이날에는 왠지 서글픔이, 2004년 새로 제정된 부부의 날엔 최근 부쩍 악화된 부부관계와 가족해체의 씁쓸함이 그리고 그것들을 어찌 해결해 보려는 욕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17장은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난다고 교훈한다. 우리 삶에 기념비적인 사건은 무엇인가? 남이 만들어놓은 기념일만 일 년 내내, 그렇게 평생 지킬 게 아니라 ‘내 삶의 기념일’을 찾아 제정하고 지켜야 하지 않을까?


오현철 성결대학교 교수·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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