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세상일에 참견해야 하는 직업 탓에 때론 다른 사람이 관심 갖지 않을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부담도 있다. 최근 지나치고 있는 일본의 몇몇 소식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를 뒤바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일본의 갈등도 포함해서다. 얼마전 일본 외무성은 한국에 대한 기술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뺐다. 이 무슨 얘기인가. 별다른 수식어 없이 그저 “한일 사이에는 곤란한 문제가 있지만 이를 적절히 관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무슨 이유로 일본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얘기를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기가 올 1월 아베 총리의 시정연설과 같다. 물론 지난 2년전, 그리고 지난해 아베는 시정연설에서 한국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문재인 대통령과 지금까지 양국 간 국제 약속, 상호 신뢰 축적 위에 미래지향적으로 협력 관계를 심화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양국 언론이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아베의 말을 두고 문 대통령이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하고 그것이 잘못된 합의라고 규정한 것에 대한 반감으로 몰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아니면 오버한 상황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이 우리에게 갖고 있는 현실적 감정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 취임 직후부터 우리를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여겨왔다. 그 당시 외무성 홈페이지도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이란 표현이 포함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점점 위안부 문제등 여러 외교적인 문제로 우리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렇게 살갑던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나누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어지고 있다. 심지어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기소된 3년전 아베는 우리를 가리켜 그저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일본 정부도 이 같은 아베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했다. 지금에 와서 언제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또 언제는 이를 빼고 하는 일본식 문장론을 두고만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일본이 왜 우리를 향해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일지 저의까지 모두 헤아리며 살기에 우리는 분명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호기를 만나 일본의 자세한 심정을 챙길 시간이 없다. 하지만 오랜시간 우리는 대북 문제 등과 관련해 한미일 3국 공조를 유지해 온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쯤에서 나는 일본과 잘 지내야 하는 부담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과 함께 미래에 우리와 일본 후손들이 지금처럼 관계가 이런 식으로 유지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부담도 함께 안고 있다. 비단 얼마 전 부산에서 벌어진 우리 시민사회단체의 노동자상 설치 시도와 관련해 “한·일관계에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일본 언론의 씁쓸한 경고 때문도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조차 동반 상승해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승국운에 재팬 패싱(Japan passing)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리적인 위치부터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국가다.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우리가 안고 있지만 그것은 세대를 거치며 치유해야 할 기나긴 숙제다. 당장 선을 그어 편을 나눌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자유와 민주 자본주의의 이념도 같이 해 왔다. 북한이 러시아, 중국과 궤를 같이 해온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일본은 우리경제가 성장의 바닥에서 관찰할 기회도 줬다. 종내는 일이 잘못되어 다시 냉전으로 치닫게 되면 같이 입을 맞춰야 할 나라이기도 하다. 지금 북한 조차 일본에게 예고된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조치 현장에 일본 언론을 초청하지 않으면서 패싱을 확고히 하고 있다.

패싱은 또 다른 패싱을 낳기 마련이다. 우리도 언제 미국과 일본의 공동이익과 안전에서 배제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 하지 않아야 한다. 일본의 복잡한 속내를 다 읽어낼 수는 없어도 지금처럼 외면만 해서는 우리도 패싱을 당할 수 있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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