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북한 경제부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핵도 포기하겠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검증도 확실히 받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결심의 배경에는 중국의 경제 성공이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은 1980년대부터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고속성장을 거듭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김정은은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듯하다. 우려했던 지배체제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올 초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선 “등소평의 개혁·개방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국식 사회주의는 앞으로도 공고할 수 있을까. 중국은 얼마 전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를 치렀다. 가장 큰 관심사는 국가주석직 연임제한 삭제여부였다. 예상대로 시진핑의 장기집권 장애물은 사라졌고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까지 거머쥐게 됐다. 하지만 주목할 점이 또 하나 있다. 양회의 전통적 후원세력이던 부동산 재벌이 쇠락하고 IT 거물들이 대거 입성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시진핑의 또 다른 ‘꿈(夢)’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디지털레닌주의(Digital Leninism)’의 실현이다. 디지털레닌주의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중심의 레닌주의를 디지털화하겠다는 뜻이다.  즉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미래형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중국은 AI시대에 엄청난 강점을 지니고 있다. 매일 7억5천만 명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SNS를 이용한다. 또 모바일 결제와 음식 배달, 차량을 호출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필적할 수 없는 거대한 빅데이터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사회를 콘트롤 할 수 있는 중요한 인프라가 된다. 통제가 일상화된 특성상 중국정부는 이를 훤히 들여다보며 자국민의 생활 패턴과 친구, 사교 활동, 독서 습관과 이념적 성향까지 거의 모든 세부적인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또 각 지방정부의 빅데이터 센터를 통해 관료의 부동산과 차량, 사회관계 등의 상세정보를 수집하고 소비습관을 추적해 부패 혐의를 가려낼 수도 있다. 농작물의 효율적 재배 관리도 가능하다. 위성이나 드론 등을 이용해 재배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를 분석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만 생산할 수도 있다. 제조업은 이미 진행 중이다. 기획부터 제조·유통·판매·시설 유지까지 전 과정을 빅데이터와 AI 등으로 통합한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시장의 수요를 바로 반영하고, 재고 없는 생산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빅데이터가 시장을 더 똑똑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보이지 않는 손’을 찾아낼 것”이라며 “계획경제는 향후 30년 간 급속도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100년 전엔 미국이 주장한 시장경제가 이기고 러시아가 졌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며 “2030년엔 계획경제가 더 우월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많은 학자들은 신(新)계획경제가 1·2차 산업에 국한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식의 산출물은 계획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1·2차 산업의 규모는 더욱 축소되고 세계화와 지식산업은 급격하게 증가해 그 복잡성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중국이 신계획경제를 경제시스템의 근간으로 삼는다 해도 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계획경제는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 자원을 계획적으로 생산·분배할 수 있어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막고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등 시장경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또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등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국가모델이 될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1990년 초반까지는 계획경제에 의해 성장했다. 짜장면이나 소주값, 목욕비 등도 정부가 정했다. 한강의 기적도 박정희가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대표적 계획경제의 성공모델이다. 지금은 시장경제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지만 실제는 계획경제에 의해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양극화라는 시장경제의 심각한 폐단을 겪고 있는 우리로선 시진핑의 신계획경제 추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양질의 IT인력 수천 명을 보유한 김정은도 유심히 지켜보는 대목일 것이다.

 

민병수/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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