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이 바꾼 스승의날, 카네이션 한 송이마저 '청탁'… 잠재적 범죄자 내몰려 난감
교내 사제 친목행사 마련에도 "어차피 존경·감사의 의미 퇴색" 폐지 요구…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

“스승의 날 꽃 선물 가능한가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후 학생들이 교사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것조차 어려워지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스승의 날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일부 학교들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해 사제 간 정을 다질 기회를 제공하며 의미 찾기에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스승의 날은 청탁금지법이 두 번째로 적용되는 날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학생, 학부모와 교사(담임·교과 담당) 사이에는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어떠한 선물도 개별적으로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급 또는 학년을 대표하는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학생 개인이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도 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꽃 한 송이 선물에도 법 위반 논란이 일면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스승의 날 의미가 퇴색되자 경기도 내 일부 학교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하며 사제 간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 마련에 나섰다.

오산 필봉초는 이날 노래를 좋아하는 교원들이 다 같이 모여 만든 교직원 밴드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대화의 시간을 갖는 등 학생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광명 충현중은 학생과 교사 간 축구 경기를 진행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들 학교 관계자들은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 진행하게 됐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스승의 날 폐지 및 휴일 지정에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스승의 날 폐지 요구’ 청원에는 이날까지 1만 7천여 명의 교사들이 서명한 상태며, 도내 24개 학교(초 2교, 중 9교, 고 13교)도 부담을 없애고 교사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승의 날을 재량 휴업일로 선택하기도 했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몇십 년 동안 이어져 오며 감사의 표현을 주고받던 스승의 날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학생들과 교사 모두 불편을 느껴 피하게 되는 날이 됐다”면서 “이러니 현장에서는 스승의 날을 폐지하거나 그냥 휴일로 만들어 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청탁금지법 관련 금품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를 학부모에게 보냈다”면서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문자까지 보내야 하나라며 스승의 날이 아니라 ‘곤욕스러운 날’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흘러나온다”고 전했다.

교사 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실제 도교육청에 스승의 날 폐지와 관련한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해당 단체 관계자는 “교권확립에 나서야 할 교육행정기관이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면서 “스승의 날 폐지 청원까지 올라오는 상황인 만큼 이날이 근로자의 날과 통합해 휴업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발송했다”고 말했다.

변근아·김형욱기자

▲ 사진=연합(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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