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저녁 6시 광주 금남로의 작은 주점에 청년 박치원이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면서 주점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시간부터 서울의 장충체육관에서 WBC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박찬희의 5번째 타이틀 방어전이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18일 자정부터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확대 실시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박찬희의 방어전으로 그 사실은 잊어 버렸다. 아마추어 시절 127전 125승 2패의 빛나는 전적에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 출신인 박찬희는 대한민국 복싱계의 영웅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실력을 가진 박찬희는 몇 달전 멕시코의 모랄레스를 이겨 4차 방어도 승리하였다. 광주의 청년 박치원은 오전 11시에 충장로 현대극장 앞에 가득한 최루탄을 보았지만 그리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장성에 있는 친지는 방문하기 나갔다가 다시 시내로 들어와 주점에 들린 것이다. 주점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광주로 내려 온 계엄군과 충돌하여 많이 다쳤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는 80년이 들어와 광주에서 낮익은 풍경이었기 때문에 박치원은 박찬희의 권투경기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도전자 오쿠마 쇼지는 한물간 퇴물이라고 하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쿠마 쇼지는 박찬희의 빠른 발을 막기 위해 계속 복부 공격을 하였고, 박찬희는 그의 주먹을 맞다가 결국 KO패를 당하였다. 박찬희의 패배를 보며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던 박치원은 친구들로부터 계엄군에 대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광주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했더라도 경찰들이 막았지 군인들이 온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온 군인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청년 박치원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내일 아침이면 이 소식들은 전혀 사실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박치원은 간밤에 많은 학생들이 체포되고, 계엄군들이 시내버스를 뒤져 젊은이들을 모두 연행해 가고 있다는 지인들의 전화를 받았다. 여자들도 끌어내려 총검으로 찌르는 것을 목격한 이들도 있다고 한다. 박치원은 이 소리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이 사는 마을인 대의동 큰 길로 나갔는데, 공수부대 1개 소대가 중무장에 방독면과 방탄복을 착용하고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의동을 지나 한국은행이 있는 중앙로 사거리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청년들이 공수부대를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7~8명의 청년들이 미도장 호텔로 뛰어들어 가고, 공수부대원 20여명이 호텔 건물로 그들을 잡으로 들어갔다. 10분도 되지 않아 청년들은 두 손을 머리 위에 깍지를 낀 채 붙잡혀 나왔다. 군인들은 청년들에게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하였다. 그 광경을 보는 시민들 중 어느 누구도 군인들에게 항의하지 못하였다. 팬티만 입은 청년들에게 군인들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자세에서 머리를 땅에 대게 하였다. 청년들은 몸이 달팽이처럼 휘어진 자세로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군인들이 갑자기 들고 있던 총의 개머리판으로 청년들의 등과 머리를 내려치고 군화발로 가슴과 배, 얼굴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순간 쓰러졌다. 구경하던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일부 시민들은 이 짐승같은 놈들아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군인들은 시민들을 향해 총을 들고 쫓아갔다. 박치원은 너무 놀라 원각사 골목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박치원은 일단 집으로 돌아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다시 길거리로 나갔다.

오후 2시가 지나 MBC방송국 앞에 군인들이 착검을 한 채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박치원은 시민들과 함께 돌을 들고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또 다른 광주 사람들을 지키는 시민군이 되었다. 너무도 평범했던 광주 사람 박치원은 1980년 5월에 투사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광주 항쟁 3년이 지난 후 자신의 광주의거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내일이 518 광주민주항쟁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있으나 아직도 진실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광주항쟁 기간에 군인들이 시민들을 죽인 것만이 아니 광주의 여인들을 집단 강간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너무도 평범했던 사람들이 손에 총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그날의 진실들을 우리는 밝혀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 시대로 나가는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