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우두동 우두산 정상 조양루(朝陽樓) 부근에는 ‘솟을 묘’라 부르는 주인 없는 고총이 하나있다. 낮에 목동들이 소를 매놓으면 소들이 밟아 무덤이 푹푹 들어가 엉망이 되었다가도 하룻밤만 지나면 원상태로 솟아났다고 한다. 그 까닭은 아들 없는 여인들이 밤에 이곳에 절을 하고 정성껏 봉분을 수리하면 득남을 한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주인은 없지만 갈 때마다 봉분에는 향이 꽂혀 있고, 간혹 무언가를 빌며 절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이곳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돌보는 자손은 없지만 남들이 와서 향을 피워주는 자리를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라고 한다.

이 묘에는 여러 전설이 있다. 그 중에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조부 묘라는 전설도 있다. 아마도 주원장이 빈천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참담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을 이 묘와 연관시켜 이야기를 꾸민 것 같다. 주원장의 할아버지 주초일과 아버지 주오사는 중국 안휘성 봉양현에서 살았다. 가난한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고려로 숨어들어왔다. 전국을 비렁뱅이로 떠돌다가 할아버지는 죽고 아버지는 춘천 우두산 밑 부자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유명한 지관이 이 집에 찾아와 며칠을 묶었다. 그런데 지관은 밤만 되면 우두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오사가 몰래 뒤따라가 지관의 행동을 살폈다. 지관은 한 곳에 땅을 파더니 계란을 묻고 혼자말로 “이곳은 명당이니 20일 지나면 병아리가 부화될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명당에 욕심이 난 주오사는 다음날 밤 삶은 계란을 가지고 가서 지관이 묻은 계란과 바꾸어 놓았다. 이를 모르는 지관이 20일 후 땅을 파보니 계란이 모두 썩어 있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가우뚱 거린 지관은 그날로 멀리 떠나가 버렸다.

주오사는 아버지 유골을 이곳에 이장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짝을 만나 4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이중 막내가 주원장이다. 주원장이 17세 때 기근으로 부모와 큰형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고아가 된 주원장은 승려가 되려고 황각사에 갔다가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하였다. 안휘성에서 봉기한 곽자홍의 휘하에서 2인자가 되더니 그의 양녀인 마씨와 혼인 하였다. 그녀는 지혜가 탁월하여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소슬 묘가 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세도가들은 자신들의 조상 유골을 이곳에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파묘 때마다 하늘에서 벼락을 때려 사람을 상하게 하니 감히 건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두산은 이름대로 소의 형상이다. 정상 충혼탑이 있는 곳을 소의 등, 조양루가 있는 곳을 소의 머리, 소슬 묘 자리는 소의 코로 본다.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에서는 소의 젖 부분에 혈이 있지만 우두형에서는 코 부분에 있다.


이곳 산맥은 금강산 매자봉(1천144m)에서부터 비롯된다. 구례산과 도솔산, 대암산, 봉화산, 사명산, 부용산, 수리봉을 거치며 산은 점차 낮고 순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두산(133m)을 만들었는데 바위 하나 없는 흙산이다. 우두산 정상에는 6.25때 순국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충렬탑이 있다. 여기서 조양루까지 내려가는 용맥을 살피면 변화가 활발하다. 조양루에서 소슬 묘까지 이어진 용맥 또한 변화가 힘차며, 그 끝에 소슬 묘가 있다.

금강산에서 우두산까지 이어진 용(산맥)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소양강. 서쪽으로는 북한강이 흘러와 합수한다. 대간룡과 대강수가 만났으니 대혈을 맺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주원장과 관련한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앞의 들판은 두 강물에 의해 운반된 토사들이 범람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풍수에서는 들판을 명당이라고 하는데 천리내룡에는 천리기상에 맞는 명당이 있어야 제격이다. 이곳은 천군만마를 도열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넓은 명당이다.

소슬 묘는 주인이 없다. 그런데도 거기에 얽힌 전설과 함께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풍수의 힘이다. 따라서 풍수를 잘 활용하면 관광자원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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