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경유하며 세상의 빛을 처음 접한 필자와 같은 동년배 사람들에게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6월에 대한 단상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어떻건 저마다 비슷할 것이다. 휴전협정 후 65년이 흘렀지만 아직 분단된 조국 아래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남북 평화모드는 기쁘고 반가운 일이지만 그간의 아픔을 떨쳐내기에는 부족하고 아쉽기만 하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단상, 그리고 월 중 주요행사인 지방선거 등 시대적 감수성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시점이다. 명예도 이름도 없이 산화한 수많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부터 지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추념식과 참배행사, 각종 추모기념식이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되며 가정, 단체에서는 조기를 게양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충원을 찾는 발길도 적어지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정도 많지 않다. 엄숙함은 있지만 의미를 크게 두드러지게 할 만한 퍼포먼스가 없어 일반 국민들에게는 소위 달력에 ‘빨간 날’로 인식될 뿐이다.

미국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Memorial Day(메모리얼 데이)는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전쟁 등의 군사 작전에서 사망한 모든 사람을 기리는 미국의 공휴일이다. 하지만 5월의 마지막이라는 계절적 특성과 겹쳐져 메모리얼 데이가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기준이 되어 매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병사들이 이런 세태를 안타깝게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날 중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ANZAC DAY(안작데이)’를 눈여겨 볼만 하다. ANZAC은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줄임말로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뜻하며, 안작데이는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참전한 용사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큰 희생자를 남긴 아픈 과거이지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4월 25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양국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여러 가지 행사와 이벤트를 진행한다.

안작데이가 다가오면 전우회를 지원하기 위한 ‘안작비스킷’을 판매하고, 과거 전쟁 중 동이 트는 새벽에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여 4월 25일 새벽에 추모집회를 열며, 기념 퍼레이드를 할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여 퇴역군인이나 그들의 영정사진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고 한다. 이런 행사와 이벤트를 보고, 참여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이긴 하나, 우리나라는 국민이나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훈장(勳章)이나 포장(褒章)을 수여하고 있는데, 이 역시 엄숙하고 관례적인 행정절차만 있을 뿐 서훈 대상자가 진정성 있게 느낄만한 칭찬의 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프랑스처럼 훈장을 패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거리에서 군인이 경례를 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자랑스럽고 뜻깊게 감흥을 줄 수 있는 친절함이 아쉽다.

시인 하만스타인의 글을 빌리자면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며, 부르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했던가. 그간 우리는 나름 단일민족이라는 긍지와 ‘효’와 ‘충’을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수고한 많은 분들께 그간 얼마나 존경과 감사를 느끼고 이를 표현해왔었는지 반성해 볼 만 하다.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했던 분들이 영원히 기억되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찾아드려야 하지 않을까.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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