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6·13 지방선거’가 이제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2014년 ‘6·4 지방선거’ 이후 4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등 경인지역에서만 모두 789여명의 지역 일꾼을 뽑는다. 내달 13일이 되면 경기지역에서는 경기도지사, 경기도교육감, 기초단체장 등 모두 622명의 일꾼이 결정되고, 인천시는 시장과 교육감, 군수·구청장 등 167명이 선출된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관심지역으로 손꼽히는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등은 이미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됐고, 경기지역 31개 시군도 주요 후보들의 대진표가 짜여졌다.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도 사실상 공천을 마무리 짓고 선거전에 돌입된 상태다.

지방선거는 나와 내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살림을 꾸려나가고 감시할 일꾼들을 뽑는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그만큼 앞으로 4년간 우리 지역 살림살이가 내 한 표에 좌우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에게는 가장 피부에 와 닿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선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중앙이슈에 매몰돼 ‘지방선거’라고 부르기도 참 애매한 듯하다. 후보들이 결정되는 등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도 지방분권과 풀뿌리민주주의 관련 의제들이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가 고작 이십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남북회담과 북미회담, 고위회담 연기, 드루킹 댓글 조작 등 대형 이슈에 휩쓸려 지방일꾼을 뽑는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원내 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후보를 정하고 거창한 슬로건만 내걸었을 뿐 당 차원의 지방선거 공약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중앙이슈에 휩쓸려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치권이 이번 선거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여야의 극한 대립도 지방선거에 ‘지방’을 제거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권자들과 가장 밀접한 지역 현안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이번 선거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되는 형국이다. 지역의 참신한 공약이나 정책위주의 선거전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참신한 정책으로 승부한 일부 후보들은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반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지역들은 대부분 비방과 진흙탕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 없는 ‘지방선거’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남북화해 국면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자 이를 지방선거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일부 후보자들은 이미 ‘공천=당선’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유권자는 안중에 두지 않는 모습이다. 출입기자들에게 전달되는 후보들의 일정을 살펴보면 ‘과연 선거를 앞둔 단체장 후보들의 일정이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그냥 조용히 버티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보인다. 경선때까지만해도 치열했던 후보들의 SNS선거전도 본선무대에서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역시 정부정책 발목잡기식의 성명과 선거운동으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리액션으로 ‘X맨’이 아니냐는 지탄을 받고 있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는 끝났고 다음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자포자기설도 나온다. 여야가 이처럼 지방선거를 이념대결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이번 선거는 대형이슈에 휩쓸려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지방선거가 눈앞인데도 선거 자체가 아예 국민의 관심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앞으로 4년간 내가 사는 지역의 살림을 맡길 책임자를 뽑는 중요한 자리다. 누가 얼마나 우리지방 살림을 더 알차게 꾸려나가고 지역주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지 따져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거·교통·환경은 물론 교육 등 주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정책과 집행을 다루게 될 일꾼들이다.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아 ‘깜깜이’로 치러질수록 부도덕하고 무능한 후보자들이 활개를 친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겠지만 잘못 뽑으면 4년이 괴롭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지방선거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한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지만, 유권자 또한 지방자치와 선거의 뜻을 되새겨 관심을 새롭게 해야 한다. 앞으로 20일 남았다. 그들이 어떤 공약으로 다가오는지 다시 한 번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정치부장 엄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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