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가계부채는 1천468조 원으로 1분기 중에 17조 원 늘어났다고 한국은행이 오늘 발표했다. 잔액은 당연히 사상 최대치다. 증가 폭은 지난해 4분기에 비해 둔화했지만 1년 전의 같은 분기에 비해서는 8% 늘었다. 이는 3∼5%대의 소득증가율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소득보다 가계대출이 많이 불어나면 당연히 위험하다. 가계가 파산할 수 있고 소비위축을 가져와 경제성장을 짓누를 수 있기때문이다. 금융기관 부실과 신용경색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이 가계부채에 각별히 신경 쓰는 이유다.

이런 차원에서 금리 인상은 당분간 자제하는 게 낫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 부담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외에도 금리를 올릴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경기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 한국 수치는 9개월 연속 떨어져 경기하강 신호를 보내왔다. 3월 제조업 가동률은 70%로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4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만 명 늘어나는 데 그쳐 10년 만에 최악의 고용상황을 맞았다. 이런 조건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문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기도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달 금리를 올리면 한국과의 기준금리 차가 0.50%p로 벌어진다. 미국이 9월에 또다시 인상하면 0.75%p로 그 차이가 커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통화정책이 경기에 큰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다.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정부는 사상 최대인 18조 원을 일자리 지원에 배정했다. 올해는 13% 늘어난 19조2천억 원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추경예산도 편성했다. 그러나 이런 재정정책이 그동안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앞으로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오늘 때마침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언급한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에 눈길이 간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시장과 사업주의 어려움, 수용성을 충분히 분석해서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김 부총리의발언에 노동계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지만 무조건 내칠 일도 아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담을 주고, 이로 인해 소비심리마저 위축된다면 그 피해가 근로자에게도 가기 때문이다. 김 총리의 발언은 경제활력을 위해서는 기존 정책들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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