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 갱도가 폭파·폐기됐다. 북한의 1~6차 핵실험이 이뤄진 곳으로 북한의 대표적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남북 정상이 천명한 4·27 판문점 선언,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의지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3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의 서신 한 장이 발표됐다. 북한의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 지금 시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핵심이다. 즉,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이다. 4·27일 남북정상회담, 6·12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져 오던 온기류에 찬물을 끼언진 셈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이 변한다면 지체없이 전화하거나 서한을 보내달라”며 회담 재개 여지를 남겼다. 이후 2차 남북정상 회담과 “우리는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는 북측의 담화,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성명을 받게 된 것은 매우 좋은 뉴스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귀결될 지 곧 알게 될 것이다. 희망하건대 오래도록 지속되는 번영과 평화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이어지면서 북미정상회담은 재추진됐다.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불과 사흘에 걸쳐 ‘롤러코스터’를 탄 셈이다.

남북미 정세가 온탕과 냉탕을 오갔으나 훈풍은 지속중이다. 때를 같이해 6·13 지방선거에 나선 경기도지사 후보들도 각종 접경기역 개발 정책을 내세웠다. 대다수 후보가 주요 공약에 경기도 중심의 남북경협 확대·평화지대 조성 공약을 포함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남북협력공단 및 경의·경원선을 축으로 한 경제·산업 및 관광·물류개발벨트 조성을,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는 IT 전문 인력을 활용해 남북경제협력의 새 장을 열어갈 ‘평화테크노밸리’ 조성을 각각 약속했다. 또 바른미래당 김영환 후보는 평화공단 및 세계생태환경공원 조성을, 정의당 이홍우 후보는 통일경제특구 유치를, 민중당 홍성규 후보는 농업협력지구 및 생태환경특구 조성을 각각 약속했다. 훈풍은 도지사 후보의 공약 제시에 그치지 않았다. 파주와 연천, 철원 등 접경지를 둘러싼 지자체의 땅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부 지역은 땅값이 호가이긴 하나 2~3배 뛴 데다 더 오를 것을 염두, 매물조차 사라지고 있다. ‘땅도 안보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열 현상까지 나타나며 해외 언론에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 우리나라 선조들이 고고한 자태의 으뜸으로 꼽은 동물은 바로 ‘학’이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라 해 ‘선학‘이라 부르기도 했다. 학의 학술적 이름은 바로 두루미다. 겨울 철새로 평소 중국 북부나 몽골,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머물다 10월 하순께 우리나라를 찾아 겨울을 난다. 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곳이 바로 파주와 연천, 강원도 철원을 잇는 비무장지대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제202호) 이기도 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 세계적으로 보호중이기도 하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민통선이북 서부평야권역(연천, 철원)에서 발견된 생물종은 총 2천424종이다. 두루미와 흰꼬리독수리, 검독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등이 포함됐다. DMZ 일원으로 확대하면 5천414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현하는 총 생물종 수의 23.5%에 달하는 수치다. DMZ가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생태계서비스 파트너십(ESP)은 개발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DMZ가 가진 보이지 않는 가치에 주목, 보존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생태계서비스는 생태계가 우리에게 주는 자연 생산물의 공급, 공기와 물의 정화 작용, 기후 및 생태계 균형, 생물 서식지 및 종 다양성 유지, 경관 및 미학적 가치 등의 모든 혜택을 의미한다.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루돌프 드 흐룻 교수와 로버트 코스탄자 교수는 1997년 네이처지에 지구 생태계서비스와 자연자원의 가치가 연간 33조 달러(1995년 기준)에 이른다’는 공동연구 결과를 발표, 세계적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접경지에 부는 훈풍, 산업단지와 아파트 개발 방식의 단순한 경제적 논리만을 적용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안경환 경제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