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면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은 별천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정치인들이 늘 공약으로 외치던 평일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져서다. 이제 직장인들은 확실한 자기만족을 찾을 수 있는 취미 활동이나 자기 계발에 돈이나 시간을 쏟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제2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에 외국어나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학원, 헬스클럽, 백화점 문화센터 등도 이런 특수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이번에는 과거의 입만 내세운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다. 그리고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마는 빈말도 아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여유다. 거창한 얘기 필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계획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못한 것인가. 아니면 안한 것인가. 빨리 보자면 못한 것이 맞다.

알다시피 대개의 직장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늘 눈치의 연속이다. 그리고 시간을 쪼갠다 해도 어수선해 마치 컴퓨터 속 디스크처럼 뚝뚝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디스크 정리하기도 큰일이다. 문제는 이런 행복한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직장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있다.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축소도 논란거리다.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 등 더 없는 일을 해야 과거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호언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정부 예측은 단순한 일자리에 국한돼 있고 그마저 어긋나고 있다. 당장 신규 고용을 검토 중인 기업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오른 인건비의 부담도 크다. 그래서 주 52시간 근로제가 오히려 근무 환경을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할 인원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빨리 끝내고 자신만 집에 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인원들을 각 직장에서 선뜻 고용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짧아져도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아서다. 이러한 가정은 어쩌면 예전처럼 퇴근한 뒤 집에서 가방에 가져온 회사 업무를 다시 꺼내들어야 하는 문제로 오버랩 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소득 감소도 겹치는 고민거리다. 대기업이야 탄탄한 기반으로 줄어들 업무시간의 봉급이 체감할 수 없어도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장인들은 당장의 이런 걱정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지금은 농담으로 오가지만 퇴근 후 대리운전기사 얘기가 곧 닥칠 현실이다. 생각해 보라. 저녁만 생기고 돈이 없다면 그 긴 밤을 무엇하고 보낼 것인가.

집으로 일찍 가는 일에 문제는 더 있다. 전문 연구직이나 창조적인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다. 양으로 하는 일은 적어지며 한 사람이 열, 아니 100사람 하는 일을 하는 직종이 많아지고 있다. AI도 이를 거들고 있다. 진료도 군대도 심지어 컨설팅마저 AI가 대신하는 세상에 몸으로 때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시간을 정해 막연히 때우는 직장보다 자유시간에 생사가 걸려있는 일로 집중적으로 일하는 직장이 늘어가고 있다. 자연히 주 52시간이란 틀에 박힐 얘기가 제한적이고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 짐작은 한다. 정부가 왜 이렇게 주 52시간 근무에 목을 매는지 하는 얘기다. 기업은 점점 부자가 되는데 노동자 근로 환경과 권익은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알다시피 부의 쏠림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각심이 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죽도록 스펙을 쌓아봤자 쓰일 곳 없는 청춘들의 그것과 대출과 부채를 오가며 매일 허덕이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 통계만 나왔다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오랜 시간 노동하는 과로사회 문제가 낳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얘기가 이런 식으로 무 자르듯이 해결되긴 어렵다. 이미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새로운 플랫폼 비즈니스가 공유경제, 즉 근로자가 원할 때 자유롭게 일해 새로운 미래를 정의하고 있다 해도 사실 이는 고용에 따른 모든 부담을 노동자 개인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서다. 아마도 이런 얘기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하는 직장인들의 볼멘 질문에도 섞여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안정된 산업기능요원이 턱 없이 부족해 이를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에 과감한 투자를 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이 판국에 앞뒤 재지 않고 주 52시간을 강행하면 높아진 업무 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이 늘어난다. 그 스트레스를 저녁이 있는 삶에 푸느니 차라리 업무에 맞는 근무시간이 효율적이다.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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