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다산책방│276페이지



“아홉 살 어린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흔하게 일어나지만 분명 별일이었고 때로는 특별한 용기와 각오, 투쟁이 필요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70만 독자를 사로잡은 ‘82년생 김지영’의 작가의 신작 ‘그녀 이름은’의 소진은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한 후 정신적 스트레스로 탈모와 위병을 얻었다. 다만 이 일을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이야기 속 여성을 호명한다.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는 방송작가 나리와 자신의 학교 조리사인 엄마의 노동의 의미를 깨닫는 수빈, 무더운 여름,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해 같은 노래를 부르며 밤을 함께 지샌 정연과 소미, 지난한 싸움 끝에 국회에 직접 고용된 청소노동자 진순 등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라는 이름으로 한 언론사에 르포 기사로 연재된 이야기가 독자를 찾았다.

‘그녀 이름은’은 총 28편의 이야기는 네 개의 장으로 묶였다. 부조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때로는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2030 여성들, 결혼이라는 제도 중심과 언저리에서 고민하는 여성들, 제 이름도 잊은 채 가사·양육 노동이나 직장 노동 때론 둘 다를 오랜 시간 떠맡은 중년 이상의 여성들, 앞 세대 여성들의 어려움을 목도하면서도 ‘다시 만날 우리의 세계’를 꿈꾸는 10·2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각 장마다 눈물 또는 웃음 혹은 다짐이라는 서로 조금씩 다른 온기로 전달된다.

1장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에서는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작가의 이야기와, 한밤중의 침입 위협에 간담을 쓸어내린 이야기 등 일상이라는 전투장을 이른바 ‘어린 여자 혼자서’ 버텨내는 일의 고단함이 펼쳐진다.

2장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위계를 이용한 강압적인 신체 접촉, 불쾌한 농담, 외모와 옷차림 지적, 부적절한 연락, 갖은 추행과 희롱과 폭력 등 상사의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다 미투라는 마지막 방법을 택한 공기업 여직원의 투쟁기이며 3장 ‘애하머니 겅강하새요’는 노년이 돼 딸과 아들 자녀의 육아까지 도맡은 여성이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중년을 넘긴 여성들의 이야기다.

마지막 4장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는 아홉 살부터 20대 초반까지, ‘그녀 이름은’에서 가장 젊은 그녀들의 아픔과 성장과 지향을 조명한다.

강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 초년생 여성,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머뭇거리는 여성, 가사와 노동 두 영역에서 자신을 소진하는 중년의 여성, 손녀 때문에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노년의 여성. 여전히 ‘다시 만날 세계’를 꿈꾸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들의 이름과 함께 또렷해진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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