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갈라놓은 강원의 두 도시


춘천에 관한 자료를 찾다보니 눈에 띠는 기사가 있었다. 2018년 1월 춘천문화원을 비롯한 지역사회단체가 국립춘천박물관이 지역의 역사를 말살한다는 규탄 성명서를 냈다는 기사다. 국립춘천박물관이 상설전시실을 개편하면서 춘천을 비롯한 영서지방의 상고사를 왜곡했다는 내용이다. 본래 이 지역은 맥족(貊族)의 땅이었는데 마치 예족(濊族)이 지배한 것으로 단정해 기술했다는 것이다. 예족은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역에 있었던 부족이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예족·맥족과 함께 한족(韓族)이 합쳐져 우리 한민족이 성립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흔적의 일부를 춘천과 강릉의 역사 분쟁에서 찾을 수 있어 반가웠다.

지역감정하면 흔히 호남과 영남을 떠올린다. 그러나 강원도의 영동지역과 영서지역도 만만치 않다. 지역감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류가 없었다는 뜻이다. 지역 간 교류를 막는 것은 산맥이다. 산맥은 강과 함께 영역을 구분하는데 이용된다. 그러나 강으로 구분되는 지역은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거의 없다. 그 사례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의 화개장터다. 반면에 산맥으로 구분되는 지역은 교류가 곤란해 지역감정도 오랫동안 남아있다. 호남과 영남 사이에는 백두대간 덕유산·지리산이 가로막고 있고, 강릉과 춘천 사이는 백두대간 미시령·한계령·대관령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고조선(BC 2333년~BC 108년)부터 배워왔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이 땅에 역사가 있었다. 바로 배달국(BC 3897년~BC 2333년)이다. 우리는 배달의 자손이라고 하면서도 배달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한민족 상고사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일제식민지사관의 영향이라고 본다. 배달국 이전 한반도 중부 동해안부터 북만주·시베리아·연해주 일대에는 예족이 살았다. 그들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삼았다. 반면 맥족은 한반도 중부 내륙부터 요동에 걸쳐 거주하며 곰을 토템으로 했다. 이들 사이에는 장맥산맥이 가로막고 있었으며, 서로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잦았다.

그때 지금의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 일대 몽골지역에서 태양을 숭배하는 환족(桓族)이 지각변동과 기후변화로 인해 이동해왔다. 이들은 빗살무늬토기라는 선진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도자를 환웅이라 불렀다. 환웅은 곰 토템을 믿는 맥족과 혼인동맹을 맺고 신단수 아래 신시에 도읍을 정하고 배달국을 세웠다. 그리고 예족을 평정해 복속시켰다. 배달국은 청동기문화를 형성하면서 1천565년 동안 유지됐다. 이어 왕검이 세운 고조선(왕을 단군이라 부름)이 2천225년 동안 지속됐지만 멕족과 예족의 앙금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자 그 유민들이 맥족 지역에는 맥국을, 예족 지역에는 부여·옥저·동예 등 부족국가를 세웠다. 이때도 예족과 맥족은 사이가 안 좋았다. 춘천 삼악산에는 이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온다. 맥국의 왕이 예국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패해 도읍이 함락 당했다. 맥국의 왕은 삼악산에 산성을 쌓고 궁궐을 옮겨 피난했다. 삼악산은 매우 가파르고 앞에는 북한강이 있어 방어에 유리했다. 예국이 산성을 포위하고 아무리 공격을 해도 점령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자 강변에 있는 바위에 병사들의 옷을 빨아 널어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꾸몄다. 맥국 병사들이 방심해 경계를 소홀히 하자 기습 공격해 맥국을 멸망시켰다. 예족 병사들이 옷을 널었던 바위가 의암이며 의암호란 지명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차적으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출발해 강릉·원산·나진을 거쳐 러시아와 유럽까지 달리는 노선이다. 경의선은 서울과 개성·평양·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달리는 노선이다. 동해선은 고대 예족, 경의선은 맥족 땅을 달리는 노선이다. 앞으로 남북은 소통이 잘 되는데 동서는 안 될까 염려된다. 그러한 염려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금부터 동서화합과 균형발전이 필요한 시기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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