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7월 24일, 대동강에 땔감을 가득 실은 화선(火船) 여러 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배들이 향하는 곳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호’였다. 대동강을 따라 평양성 바로 아래까지 들어왔던 셔먼호는 대동강 중간에 있는 모래톱을 만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평양 감사 박규수는 군함 같은 위용을 지닌 셔먼호를 공격하려면 화공(火攻)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의 한 장면 처럼 박규수는 배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안에 땔감을 가득 싣게 했다. 그의 화공 작전으로 마침내 셔먼호에 불이 붙었고, 배 안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은 살기 위해 대동강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성난 평양 백성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됐다.

1865년 4월, 미국 북군의 사령관 그랜트 장군의 승리로 5년 동안의 남북전쟁이 종결되자, 미국은 이듬해인 1866년부터 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미 아시아로 진출해 교역을 빙자한 식민지 국가 건설에 주력하자 미국도 여기에 자극을 받았고, 조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보낸 배가 바로 제너럴셔먼호였다.

셔먼호는 맨처음 평안도 용강현 다미면 주영포에 종선(從船) 3척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당시 셔먼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용강현령은 평양 감영에 서양의 거함이 주영포에 정박했다고 보고했다. 곧바로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평안감사 박규수는 셔먼호가 혹시 바람 때문에 표류해 서해 앞바다에 정박한 것인지 확인케 했다. 우선은 셔먼호가 왜 조선땅으로 오게 된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용강현령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셔먼호에 관리를 보냈더니 중국인 통역을 통해 기독교 목사 토마스(Thomas)가 응대했다. 토마스 목사는 용강현 관리들에게 “셔먼호가 평양으로 가고자 한다”며, ‘평양의 산천은 어떠한가’, ‘평양에는 어떤 보물이 있는가’, ‘평양의 성곽은 어떠한가’ 등의 질문을 했다. 여기에 더해 토마스는 왜 조선이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신부들을 7명이나 죽였느냐는 협박조의 질문도 했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박규수는 황주목사를 셔먼호에 보냈다. 황주목사는 토마스에게 “조선에서는 서양 배가 국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이에 토마스는 “누가 감히 나를 막느냐”고 소리를 쳤고, 배의 양쪽에 대포를 1좌씩 설치한 후 3발씩 발포했다. 이는 조선에 대한 완전한 협박이었다.

1866년 7월 10일 셔먼호는 대동강 보산진을 통과했고, 며칠 뒤 평양 부내까지 당도했다. 당시 셔먼호 선원들은 미국 측 도발에 항의하려는 평양 감영의 고위 무관인 이현익을 납치해 선내로 끌고 갔으며, 자신들이 가져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을 조선의 쌀과 홍삼, 종이, 호피와 바꾸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셔먼호와 관련된 전체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박규수는 셔먼호가 비록 상선으로 위장돼 있지만 강력한 무기 체계를 갖춘 배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판단, 협상을 통해 미국으로 돌려보낼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이들에게 식량과 땔감을 제공하며 달래고자 했다. 그러나 셔먼호 측은 박규수의 제안을 무시하고 대동강을 지나가는 상선들을 약탈하고, 마구 총을 쏘았다. 그 결과 조선인 7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외교적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박규수는 생각을 고쳐 먹고 셔먼호를 섬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셔먼호를 강물 깊숙이 가라앉게 한 것이다. 이 사건이 바로 우리 민족과 미국의 첫 대결이었던 셈이다. 이후 진상 조사 문제로 조선과 미국은 공식 접촉을 갖게 됐고, 신미양요(1871)를 거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지 152년 만인 지난 12일 ‘세기의 담판’이라 불린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다.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 선언을 하지 못했다고 회담의 의미를 축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세계 평화를 위한 매우 의미 있는 회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6.13 선거로 새롭게 뽑힌 지역일꾼들과 함께 남북 지도자가 빠른 시일에 만나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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