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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칼럼] 소박한 산사의 밥상

현종 2018년 06월 13일 수요일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전부 다, ‘그 때’가 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시기를 매우 중요시 해야 된다. 때 맞춰 파종을 하고 심어야만 최고치의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기후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는다. 올 봄엔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그만 때 맞춰 심고 씨를 뿌려야 할 것을 놓치고 말았다. 때 맞춰 피는 꽃들이 안 예쁘고 안 좋은게 없겠지만, 박꽃이 특별히 아름답다. 한 여름의 긴긴 해가 뉘엿뉘엿 서산마루를 넘어가면 그 때 주위에 있는 달맞이 꽃과 동무해서 새하얀 박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는 어쩌다가 때를 놓쳐 박 모종을 사기도 힘들었다. 주문진, 그리고 강릉의 씨앗이나 모종 파는 가게를 다 다녀도, 둥근 바가지 박 모종은 못사고 조롱박 모종만 살 수 있었다.

초가 지붕 대신 파란 잔디 위나 큰 바위에 둥근 달처럼 열린 큰 박이 점잖게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올해는 못 보게 됐다.

하얗게 피는 박꽃은 꽃도 커서, 자세히 보고 있으면 꽃이 톡톡 피는 것도 보인다. 필자는 풀내음을 머금은 소박한 박꽃의 향기를 참 좋아 한다. 사람에 비유하지면, 박꽃의 소박하고 청아한 자태나 향기는 어머니나 손윗 누이를 연상하게 한다.

늦었지만 호박도 몇포기 심었다. 호박은 참으로 유용한 식물이다. 노랗게 피는 꽃도 예쁘기는 하지만, 여린 줄기나 호박잎을 따 잘 쪄서 된장에 쌈 싸 먹으면 한 여름 반찬 중 최고의 맛이다. 애호박은 나물이나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면 정말 맛이 좋다. 그리고 가을에 잘익은 늙은 호박은 호박죽을 끊여 먹어도 참으로 맛이 좋다. 더 좋은 것은 한 겨울에 호박을 잘 깎아 줄처럼 길게 만들어 빨랫줄에 널어 얼렸다 녹았다 반복해서 말린 것으로 ‘호박떡’을 해 먹으면 세상 그 어떤 떡보다 맛이 꿀맛이다. 계절떡으로 봄에는 쑥떡을 서너번이나 해서 먹고 겨울에는 호박시루떡을 한 두번 해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지난 일요일 점심 공양 때,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 공양은 해야되고 준비된 찬은 별로없고, 늦게 심은 상추나 루클라는 아직 어려 먹을 수도 없었다.

문득, 사찰 주위에 자생으로 자라는 토끼풀하고 머위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많던 토끼풀도 잘 자라 좋은 것은 누군가가 다 잘라먹고 안 좋은것만 남아 있었다. 부지런한 산토끼나 고라니가 먹은 듯 했다.

몇 년전에 진주에서 가져다 심은 몇 그루의 가죽 나무가 있다. 연한 줄기만 땄다.

예전에 누에를 쳤는지 산뽕 나무도 많이 있어 부드러운 뽕잎을 따서 제피잎과 함께 푸짐하게 잘 먹었다. 다들 최고의 오찬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사찰에서는 갑자기 공양할 사람이 많이 오면 텃밭에 있는 상추나 야채로 생된장에 쌈으로 대접하는게 제일 쉽고 풍성한 대접이다. 거기다 풋고추라도 있어 된장이나 고추장에 푹 찍어 먹으면 누구라도 만족해 한다.

고추도 얼마전에 심어 이제 꽃이 피고 고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끔은 풋고추를 많이 사다 놓는다. 고추는 그래도 보관이 쉽고 좀 오래 두어도 먹을수 있다.

요즘 현덕사에 오면 일반적인 반찬이 아닌, 아주 색다른 먹거리가 많다. 방아잎이 있고 또 향이 억수로 진한 제피 잎도 있다. 큰 절 스님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점심때 고수 반찬이나 고수쌈이 나오면 밥을 두 그릇이나 먹을 만큼, 다들 좋아하는 특식이다.

가죽나물도 특이한 향이 있어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자는 그 향이 좋아 봄철에는 경상도,특히 진주까지 가서 사 온다.

쪄서 나물도 하고 찹쌀풀을 발라 햇볕에 잘 말려 가죽부각을 하기도 한다.

그냥 연한 잎을 쌈으로 먹어도 맛이 좋다. 현덕사 주변에 이른 봄부터 늦여름까지 제일 흔하게 많이 나는 게 머위이다. 줄기는 줄기대로, 잎은 잎대로 나물이나 쌈으로 먹으면 쌉싸름한 게 그 맛이 일품이다.

초가을 쯤이면 덜 여문 산초를 따 산초 장아찌를 담가 먹으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가을에 어쩌다가 송이라도 몇 뿌리 생기면 덜 여문 박을 따서 송이 박꼬지 국을 끓여 내 놓으면 최고로 귀한 대접이 된다.

요즘에는 마트나 시장에 가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찬거리나 과일이 천지다.

하지만 제철 그 때에 나오는 채소나 과일의 맛이 훨씬 더 맛 좋고 사람들의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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