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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토리]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 "전국 최고 '삶의 질' 보장하는 경기도 만들겠다"

김현우 kplock@joongboo.com 2018년 06월 13일 수요일


도민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마타도어, 흑색선전에 의존하는 낡은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정치를 열라는 촛불의 명령을 재확인했습니다. 

16년 구태 기득권 도정을 끝내고 민주당과 이재명을 선택해주신 도민 여러분의 뜻, 무겁게 받들겠습니다. 기득권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공정한 세상,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에게 일할 기회를 주신 도민 여러분께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자부심 넘치는 경기, 전국 최고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경기를 만들겠습니다. 평화의 시대, 번영과 미래의 한반도에서 경기도가 그 중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경기, 이제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줄곧 자신을 ‘흙수저’가 아닌 ‘무수저’ 출신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 당선인은 생계를 위해 소년공으로 여러 공장을 전전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전두환 정권 당시 이뤄진 교육개혁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된 이 당선인은 본격적으로 공장 일과 공부를 독하게 병행하다 결국 대학에 입학, 사법고시까지 한 번에 통과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던 이 당선인은 정치에 입문, 낙선의 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재선의 성남시장을 거쳐 결국 1천300만,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지사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아온 그는 새로운 경기도를 위해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경기 퍼스트’를 위해 달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소년공 이재명 = 이재명 당선인은 1963년 경북 안동 태생이다. 본래 5남4녀지만, 누이 둘이 일찍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열 살에 아버지가 돌연 집을 떠난 뒤 어머니와 일곱 남매가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중학교에도 진학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이 당선인 일가는 성남의 빈민촌에 정착한다. 나이가 어렸던 그는 다른 사람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가며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실제로는 취업이 불가능한 소년공이었지만, 신분이나 이름으로는 성인인 채 말이다. 거친 공장생활에서 그는 수많은 사고를 당했다. 당시의 사고 때문에 그의 손가락에는 아직도 고무조각이 박혀 있고, 후각세포도 55% 이상 괴사해 지금도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리는 큰 사고도 당했다. 당시에도 노동법에 산업재해 보상조항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고에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기계보다 값싼 노동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치료받지 못한 팔은 멋대로 비틀어졌고 이후 굽은 팔을 가리려 사시사철 긴소매만 고집하게 됐다.



◇인권변호사 이재명 =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단행했던 교육개혁 조치가 이 당선인의 인생에 전화위복이 됐다.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학력고사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게 됐고, 과외가 금지되면서 장학금 제도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생계를 위한 공장 일과 공부를 독하게 병행해 마침내 학력고사에서 전국 순위 3천등 이내에 드는 고득점에 성공했다. 서울대 입학도 가능했지만, 그는 고심 끝에 전액장학금에 매월 생활비 30만 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내건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 당선인은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 일부를 다달이 셋째형에게 보내 공부를 도왔다.그러던 1982년 어느날, 그는 우연히 유인물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접했다. 매스컴의 말대로 광주시민은 폭도라 믿었던 이 당선인은 이를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갈등을 거듭한다. 군사정권의 주구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안형편 사이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변호사의 강의를 듣고 그의 철학에 매료된다. 그는 마침내 변호사 개업을 결심한다.



◇시민운동가 이재명 = 이 당선인은 성남에서 주로 노동과 인권사건 변호를 맡으며 민변 활동을 했다. 시민들과 뜻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하며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쳤다. 정치권력, 언론, 돈, 조직 등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웠지만 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 앞에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들이 문을 닫으며 의료공백이 심각해졌다. 이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명의 뜻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는데, 시의회로부터 47초 만에 날치기를 당하고 만다. 한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던 그는 시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한 순간이다.



◇성남시장 이재명 = 이 당선인은 2010년 51.2%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시장이 된 그가 처음 마주친 것은 6천500억 원이 넘는 부채였다. 그는 이를 청산하기 위해 곧바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부채 청산 및 복지의 비결은 이른바 ‘3+1 원칙’이었다. 부정부패, 예산낭비, 세금탈루를 없애고 그렇게 아낀 예산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장실도 2층으로 옮겨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아방궁’이라 비난받던 기존 9층 시장실에 아이사랑놀이터와 북카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또한, SNS로 시민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시정을 알리고 보완해나갔다. 2013년 마침내 정치 입문의 계기이자 공공성의 상징인 시립의료원의 첫삽을 떴다. 2014년, 그는 득표율 55.1%로 재임에 성공한다. 이때 보수가 우세한 분당에서 오히려 득표율이 오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실적과 실력만으로 불리한 정치지형을 극복해낸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시의회 돌파는 녹록치 않았다. ‘청년배당·산후조리·무상교복’으로 대표되는 3대 무상복지 역시 시민들과 손잡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룬 결실이었다. 성남시장으로서 살림, 소통, 복지, 공약이행 등에서 이 당선인이 이룬 업적은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시민이 주인인 성남’이라는 슬로건처럼 그는 언제나 시민이 주권자고 정치인은 대리인일 뿐임을 강조했다.

김현우기자/kplock@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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