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감 선거 승리의 주역은 혁신을 바라는 시민들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다운 교육, 꿈이 있는 교실, 소통하는 학교, 공정하고 정의로운 인천교육” 만들기에 함께 해주신 시민과 경쟁했던 후보들에게도 위로와 감사를 전합니다.

선거에 출마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현장공감대장정’이라는 정책간담회를 열고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구성원 등의 얘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발표했던 공약이 바로 ‘현장공감대장정’의 결과물입니다. 

인천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 기본부터 챙기겠다는 약속입니다.

인천시민들께서 저를 선택한 이유는 중단없이 ‘미래혁신 교육’을 실천하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천교육을 한 걸음 더 전진시키라는 시민들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당선자-


▲ 1993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해고자원직복직을 촉구하며 농성중인 도성훈 당선인

6.13 지방선거에서 인천시교육감 민주진보 후보로 나서 승리한 도성훈(57) 당선자.

도 당선자는 지난 3월 인천의 88개 인천시민사회단체와 5만여 시민참여단에 의해 민주진보 촛불 교육감 단일 후보로 선출됐고 이번 시교육감 선거에서 승리했다.

도 당선자는 초기 전교조 활동부터 최근 동암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교육 현장을 누볐고, 근본적인 인천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학교 비리가 없는 청렴한 인천 교육과 아이들의 행복을 우선하는 학교, 소통하는 학교, 공정한 인천교육 조성 등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도 당선자가 앞선 진보 교육감의 부패를 교훈 삼아 참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지, 인천 교육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천안 석천리 고향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모습


◇궁핍한 산골 소년 도성훈의 학창·대학시절=도 당선자는 1960년 12월 10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 석천리 작은 산 중턱 산골마을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궁핍한 산골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원도 철암의 주물공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부모님과 떨어져 어린 시절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강원도 철암에서 부평으로 옮겨 정착하게 되면서 10살 때 부평남초등학교로 전학하여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에 다녔고 줄곧 부평에서 자랐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던 도 당선자는 박정희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1979년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해 10월 박정희의 죽음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민주화 요구가 분출됐고 학내 시위도 빈번해졌다.

그러나 도 당선자는 시위 학생들이 사복경찰에 얻어맞으며 잡혀가는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던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교사로서 학교 비리에 맞섰던 도성훈=도 당선인은 대학 시절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학생들에게 크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불의에 맞서 싸워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다.

도 당선자는 1985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 성헌고(현 인제고)에서 새내기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나 재단 비리와 파행적인 학교운영에 맞서 평교사협의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아 학교 정상화 투쟁을 벌였다.

평교사협의회가 요구한 학교 정상화, 비리 척결 등이 수용되는 승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후 의문의 도난사건을 빌미로 시작된 탄압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다시 학교 민주화투쟁 주도하다 파면됐고 성헌고 학생들을 비롯해 학부모들과 함께 징계 철회 투쟁을 벌였고 농성 23일 만에 승리를 끌어냈다.


◇전교조 인천지부 결성과 해직 당한 도성훈=지속적인 학교 내 민주화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던 도 당선인은 1989년 6월 10일 인천대 대학원 강당에서 교사 800여 명이 모으고 전교조 인천지부 결성을 주도했다.

전교조 결성 두달여만인 1989년 8월 1일 전교조 활동 등을 이유로 해직당했다.

해직교사 시절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국장과 수석부지부장, 국공립중등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해직자 복직 투쟁을 전개했다.

전교조 합법화 방침에 따라 1994년 4월 복직해 관교중, 인천여공고에서 교사생활을 한 뒤 1999년부터 1년 반 동안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전교조 인천지부 지부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11대, 12대 지부장을 역임했다.

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부개고를 거쳐 2012년부터 동인천고, 2016년 인천형 혁신학교 행복배움학교 동암중의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 혁신에 앞장서 왔다.

학창시절 순수한 산골 소년은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을 보며 투사로 성장했다.

또 민주노조 운동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인천의 노동자 서민들의 아픔과 늘 함께하고 연대하기도 했다.

85년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교사 시절부터 학교 민주화와 교육 민주화, 참교육 실천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한 교육운동가이기도 하다. 


1999년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처장을 맡아 인천시교육청과 고질적인 인사문제에 대해 교섭하고 있는 도성훈 당선인



◇교육 혁신가 도성훈=도 당선자의 교육관은 ‘행복해야 교육이며 교육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행복 교육의 시작이다’이다.

도 당선자는 인천이 혁신 교육의 후발주자지만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혀왔다.

다른 시도가 겪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지난 4년간 진보 교육은 인천 교육의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인천시장과 인천시교육감의 교육철학이 맞지 않았지만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인천시장에 당선됨으로써 교육 협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 당선자는 인천 교육을 유관기관과 협치해, 3각 교육거버넌스 즉, 교육청·시청·마을교육공동체가 인천 혁신교육 2기의 인큐베이터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하고 완전한 선거 공영제 정책, 출마자격 요건 완화 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춰 교육정책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사가 교육 정책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2009년 전교조 인천지부 창립 20주년을 맞아 인천참교육장학재단을 설립해 2011년부터 초중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신의’를 가장 중요시하는 도성훈=도 당선자는 정의감만 가지고서는 교육 혁신으로 나아가기도 힘들고 ‘정의’라는 가치도 혼자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상호간의 신의를 통해 굳건한 마음으로 연대하고 정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게 도 당선인의 소신이다.

‘신의’는 교육현장 곳곳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이 같이 만들어 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해왔다.

‘현장공감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곳곳을 다니며 60여 차례의 정책간담회를 가진 것도 그 이유다.

소통과 연대, ‘신의’라는 것을 인천 교육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였다.

교육의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 기본부터 챙기겠다는 약속을 도 당선인은 지켰다.

주재홍기자/jujae84@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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