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7기 인천광역시장 당선인 박남춘입니다. 

먼저 300만 모든 인천시민께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켜 주신 인천시민들께서, 인천의 정권교체도 이뤄내셨습니다.

시민들께서는 인천시민의 자긍심을 지키고, 희망 가득한 인천특별시대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당선은 박남춘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300만 인천시민 모두의 승리입니다.

이제 300만 인천시민 모두가 특별하고 존중받는 인천입니다. 

인천특별시대에는 300만 시민 모두가 인천의 주인입니다. 

박남춘이 잘 섬기겠습니다.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인천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시대에 주역이 될 것입니다. 

박남춘이 잘 해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성원에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해 일로써 보답하겠습니다.  -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인-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당선인은 인천 박문초등학교와 동산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 영국 웨일즈대학원에서 국제운송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박 당선인은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20여년 간의 해운항만청과 해수부 공무원 생활을 통해 해양·항만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해수부 공무원 시절,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겪게 된다.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차관급)까지 이어졌으며, 지금의 박 당선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고 ‘친문계’ 핵심 인사로 부상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스스로를 ‘뼈노’라고 칭하는 박 당선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박 당선인은 “300만 인천시민 모두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한다”며 “칭찬 앞에서는 겸손한 귀를 열고, 쓴소리 앞에서는 겸허한 귀를 열어 시민과 함께 인천의 꽃길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봉사가 일깨운 어린 시절 = 박 당선인은 한국전쟁으로 피난 나와 과일장사를 하시는 어머니, 인천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이신 아버지와 인천시 중구 송월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송월초등학교에서 천주교 학교인 박문초등학교로 전학가면서 지금의 신앙생활을 갖는 계기가 됐다. 박 당선인은 동산중학교 2학년 때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청소년적십자회(RCY)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을 계기로 제물포고등학교 시절에도 RCY의 경기도지역 중등부 회장을 맡아 농촌 봉사활동에 나서게 됐고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 됐다. 고려대 법대에 입학한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박 당선인에게 또 다른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한 교수는 박 당선인에게 “미국같은 선진국들은 법조인이 인정받는 시대에서 행정가들이 주도하는 행정국가로 바뀌었네.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고 유능한 행정가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역량을 펼치는 것이 어떤가. 굳이 법관이 되어 작은방에서 한평생을 보낼 것인가”라고 말했고, 박 당선인은 이 말을 계기로 법관을 접고 행정가로 나서게 됐다.



◇공직 좌우명, 원칙과 신뢰 =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박 당선인은 비인기 부서인 해운항만청을 지원했다. 당시 인사부서 담당자는 동기들의 부처 배정에 반발하는 것이냐며 화를 냈지만 박 당선인은 “제 소신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 항구도시 인천입니다. 인천시장이 아니라면 고향 인천의 바다를 관리하는 해운항만청장이 제 꿈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바다 행정과 인연을 맺었다. 박 당선인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를 가슴에 품고 있다.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진실해야하고 진실을 믿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일화도 있다. 박 당선인이 해양항만청에서 항무담당을 맡던 시절,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형이 대표를 맡은 업체에 편의를 주라는 압력을 받게 됐다. 이 업체는 지역주민 일부와 갈등을 빚고 있었고, 대통령이 직접 해운항만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력을 넣을 정도였다. 박 당선인은 살아 있는 권력의 압력이더라도 불법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기업과 주민들을 설득해 법적 절차대로 사업을 진행하게 했다. 박 당선인의 끈질긴 노력으로 9개월 만에 문제가 해결이 됐고,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난 후 5공 비리 척결 때에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박 후보는 “대통령의 압력에도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양복주머니에 항상 사직서를 넣어 다닐 정도였다”며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지켜낸 원칙이 결국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도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정치입문의 계기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 = 해수부 국장 승진을 코앞에 둔 박 당선인은 당시 장관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승진은 고사하고 총무과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박 당선인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설득력은 대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업무처리와 지식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 직원들이 직무와 연관된 학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직혁신을 추진할 사람,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분위기를 구축할 사람, 공정함과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구축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박 당선인을 설득했다. 이 때 노 전 대통령과 맺은 인연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수석(차관급)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었고,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의 키워드는 안정과 민생 = 인천 남동갑에서 19대 국회의원이 된 박 당선인은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자 노력했고, 누구보다 많이 인천과 남동구의 내일을 고민했다. 어린시절 남동구 도림동에서 과수원집 아들로 살았으며, 박 당선인의 어머니는 여전히 남동구 간석동에서 살고 있다. 박 당선인은 주민 밀착형 지원을 통해 논현경찰서, 남동우체국, 수인선 터널식 방음벽 설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했고, 남동공단은 최첨단 리모델링 단지로, 소래포구는 국가어항으로 예비 지정되는 등 남동구 5대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300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4년 의정 종합평가에서 7위, 인천지역 1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해 국가 안전예산을 확충하는데 기여했고, 작게는 남동구 골목골목 범죄예방 CCTV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까지 기여했다. 박 당선인은 ‘안전이 곧 민생이다’는 철학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조기정기자/ck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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