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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됐는가

2018년 06월 14일 목요일

대학생 김성우(27.가명)씨는 지난 3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 평균 11시간을 공부했다. 그러나 낙마는 거듭됐고, 돈 쓸 곳은 늘어났다. 교재비, 인터넷강의료, 각종 통신비…. 부모님에게 받는 20만원의 용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현재 구청에서 운영하는 월 1만4천원짜리 청소년독서실에 다니며 각종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공무원만 바라봤는데 올해 들어서는 다른 공공기관도 지원했다"며 "계속 떨어지는데 나이는 먹고 점점 조급해진다"고 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 이어지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 공채시험을 준비하는 청춘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시험에 합격해 번듯하게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고 싶지만,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청춘들이 투자 또는 낭비하는 기회비용만 연간 17조원이 넘는다. 문제는 비용뿐 아니다. 이른바 '공채시험'을 패스한 이들은 조직 내부에서 파벌을 형성해 폐쇄적 조직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경력 취업자는 어렵게 입사해도 조직에서 서자로 취급받기 쉽다. 청년들이 더욱 기를 쓰고 공채시험에 매달리는 이유다.


◇ 공채에 몰려드는 사람들

대표적인 공채는 공무원 시험이다. 학술지 '현대사회와 행정'의 28권에 게재된 '공무원시험준비생 규모 추정 및 실태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국내 공무원시험준비생(공시생) 규모는 약 44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청년 인구(만 20∼29세·644만5천명)의 6.8%에 달하는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현안과 과제: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 준비로 발생한 기회비용은 2016년 한해에만 17조1천429억원이다. 2016년 명목 GDP(국내총생산)의 약 1.1%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많은 사람이 많은 돈을 들여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지만, 합격증을 받기는 쉽지 않다. 2011∼2015년 5년간 국가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127만명에 달하지만 합격자는 2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비단 '국가고시'뿐 아니다. 삼성그룹 입사에는 통상 10만명 안팎이 지원한다. 최종합격자 명단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려워 이른바 '삼성고시'라 불린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은행권 입사 경쟁률도 통상 100대1에 육박한다. 연봉이 높고 안정적이어서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금융감독원이나 한국은행 등 금융공기업은 어려운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 왜 공채에 집착하나…상대적으로 공정하지만 소수만 기쁨

공채의 장점은 분명하다. 우선 많은 인원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발할 수 있다. 공채 과정은 길어야 두세 달 정도다. 기업체는 수백 명의 비교적 검증된 인재를 시험을 통해 뽑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한국처럼 경쟁은 치열한데 신뢰가 바닥인 사회에서 시험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시험이라도 없으면 '돈없고 빽없는' 이른바 흙수저들이 괜찮은 직장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는 로스쿨처럼 말이다.

로스쿨은 연소자 선호, 높은 학비 부담 탓에 서민이나 직장인의 진입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조인·관료·경영자·교수의 자녀 등 특권층이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비판도 있다.

로스쿨뿐 아니다. 대학총장추천제, 학생부종합전형(학종)도 비슷한 오명을 듣고 있다. 전형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고, 가진 자나 권력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편성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로스쿨과 학종은 각종 부정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입사시험마저 없다면 '흙수저'들은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 우려한다.

김 씨는 "공채가 공정한 시험으로 제일 열심히 한 사람이 붙는 것이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과열된 경쟁 때문에 바늘구멍 같은 시험이 돼 소수만이 기쁨을 누리고 다수는 절망에 빠지는 시스템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 모(32)씨는 "공채 경쟁률이 워낙 높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공채가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몇년째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직 등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 2년이 안돼 직장을 옮겨야 하고 같은 회사 내에서도 차별을 많이 받는 것 같다"면서 "비정규직 친구들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공채로 입사하고 이왕이면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하라고 얘기해준다"고 덧붙였다.


◇ 공채의 오래된 뿌리…그 이름은 과거제

소설가 장강명은 르포 '당선, 합격, 계급'에서 공채의 뿌리를 과거제로 추정한다. 대규모 공개 시험을 거쳐 엘리트를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다. 과거제가 고려 광종 때인 958년에 도입됐으니 공채제도는 1천년 넘게 이어져 온 인재 선발제도인 셈이다.

과거제는 시험을 통해 능력 있는 '선비'를 선발한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폐단도 컸다. 우선 사회적 낭비가 심했다. 책에 따르면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의 나이는 평균 36.4세다. 10대 중반부터 공부해 합격해도 20년은 걸렸다. 60∼70대도 있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조선 정조 때에는 문과시험(정시 초시) 응시자가 10만명을 넘었고, 1879년 문과 정시 응시자 수는 21만명에 달하는 등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명을 넘겼다. 최종합격자는 한해 서른 명 남짓. 청년 수십만이 한창 일할 나이에 과거에 매달린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인재는 제대로 뽑지 못했다. 과학기술이나 경제, 민생은커녕 그 시대 국제 정세, 행정에 대해서도 무지한 인재들이 많았다.

실학자 박제가는 "어린아이 때부터 과거 문장을 공부하여 머리가 허옇게 된 때에 과거에 급제하면 그날로 그 문장을 팽개쳐 버린다. 한 평생의 정기와 알맹이를 과거 문장 익히는데 소진했으나 정작 국가에서는 그 재주를 쓸 곳이 없다"고 비판했다.


◇ 완고한 문턱…그들만의 기수문화

공채의 큰 단점은 폐쇄성에 있다. 들어가긴 쉽지 않지만 일단 '이너서클'에 포함되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다. 공채에 합격한 이들은 강고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다. 합격한 연도에 따라 기수가 생기고 이는 자연스레 기수문화로 이어진다. 몇 년도에 입사 기수라든가 사시 몇 회라든가 하는 질서가 생기고, 그게 조직 내부의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큰 축이 된다. 합격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직 내에서 이권을 지키려는 기수문화의 열렬한 수호자가 된다. 문제는 이런 기수문화가 한편에서는 배제의 시스템으로, 다른 편에서는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장강명의 말을 들어보자.

"애초에 경쟁할 이유가 없으니 다들 게을러지고, 거기에 무능한 선배들이 발목을 잡고, 그런 선배를 보면 더 의욕을 잃는다. 무능한 선배들은, 자기 자리를 치고 들어오는 유능한 후배를 건방지다며 깔아뭉개기도 한다. 그런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보호자를 찾거나 끼리끼리 뭉쳐야 한다. 실력이 아니라 인맥을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지며 파벌이 생긴다. 그렇게 관료집단이 된다. 엘리트를 모아 놓기는 했으나 외국의 같은 직업군에 비하면 전문성이 떨어진다"

경력자로 입사한 이들은 공채로 들어온 이들과 견줘 승진, 연봉 등에서 차별을 받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A씨는 "경력자로 입사하면 경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는 데다가 공채들은 자기들끼리 형 동생 하면서 지내기도 한다"며 "경력자로서 회사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수시채용, 다른 기업·기관 경험·문화 가져올 수 있어"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공채의 장점인 공정성은 살리면서 수시채용 등 채용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국가나 공공기관은 공채가 의미가 있다. 기계적이긴 하지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며 "다만 민간기업은 자신들에게 맞는 사람들을 수시로 채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공채제도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채병득 인사팀장은 "채용비리 등이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부작용이 있다고 해 공채제도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다만 수시채용은 다른 기업이나 기관의 긍정적 경험과 문화를 조직에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우리도 수시채용을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공채제도를 포기할 순 없을 것 같다.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인력확보가 최우선인데, 졸업시즌 등 비슷한 시기에 양질의 인력이 쏟아지는 만큼 공채를 통해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다만 좋은 인재들이 언제나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만큼 상시로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을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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