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데스크 칼럼] 원주민과 뜨내기

이금미 2018년 06월 24일 일요일

그 이름이 주는 첫인상은 설렘과 두려움이다. 따로따로 한 말 한 말 새기니 새로움이자 변화의 예고다.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불안과 전운이 감돌았다. 까닭은 돈 때문이었을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을까. 이내 천지가 진동했다. 지축을 울리는 발굽에 모든 것이 짓밟혔다. 갈아엎고, 파내고, 메우기를 되풀이했다. ‘뉴타운’은 그렇게 4대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고향 땅을 갈랐다. 중심은 환지방식, 외곽은 수용방식이란다.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한동안 존치되는 것과 개발의 허상이 밥상머리 주제였다. 불과 2km 떨어진 읍내에서 벌어지는 살풍경은 수용되지 않은 인근 마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17대손인 부친은 뉴타운 소식에 늘 덤덤한 표정이었다. 용하게 수용을 피했다는 안도감,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이었으리라. 동시에, 적어도 나에겐 지인들이 받게 될 천문학적 보상 액수가 알 듯 모를 듯한 박탈감을 안겨줬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 뉴타운은 실루엣부터 과거의 것과 다르다.

모친의 고향은 금강 상류에 자리한 동네였다. 어릴 적 외가와 관련된 기억이란 물가에서 바라보곤 했던 흐르는 물이다. 긴 여름방학에나 갈 수 있었던 외가의 물은 개울보다 웅장했고, 바다보다 역동적이었다. 이제는 액자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개 읍, 5개 면, 68개 마을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몰 면적, 저수량으로 볼 때 국내 다섯 번째 규모라는 다목적 댐은 모친의 고향 땅을 통째로 삼켰다. 언제인가부터 댐 방문은 가족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벚꽃 만발하던 어느 날 그곳으로 향했다. 수몰 이전에는 산골짜기였을 물가를 굽이굽이 돌면 익숙한 산세가 펼쳐진다. 모친은 추억 속에 빠진다. 스물이 넘은 나이까지 물살을 헤치며 다슬기를 잡던 처녀 시절의 모습. 여기는 무슨 산이었고, 저기는 무엇이었다는 혼잣말이 이어진다. 물밖에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한 손가락질이 무뎌질 무렵 외조부와 외조모의 뫼 터에 닿는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볼 수 있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갖가지 생각을 떨쳐 버릴 때쯤 댐이 바라다보이는 산소에 닿는다.

개발논리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데 집중한다. 유용하게 만들고, 발달하게 하고, 발전하게 하고, 새 것을 만들거나, 새로운 생각을 내어놓는다. 개발,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자리할까. 몇 해 전 모 대학 환경조경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의 총괄조경가이기도 했다. 본질은 외면한 채 조경의 겉모습만 묻는 우매한 인터뷰어에게 시위하는 듯이 수줍은 웃음만 보이던 인터뷰이. 서너 번의 선문답 끝에 답을 내어주던 그는 “고향집이 없으면 모두 ‘뜨내기’”라는 뜻밖의 정의를 내렸다.

지난 30~40년 동안 지나치게 빨리 서구화·산업화하면서 물리적 환경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 도시정책이나 국토계획이 다분히 뜨내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옛날부터 물려받은 물리적 환경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는 고유의 본성까지 잃었다. 인간 또한 생물이라 자연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한데, 잃어버렸음에도 잃어버렸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다. 모든 생물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개발현장에서는 그 지역에 본디부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원주민의 목소리가 울타리 밖으로 울릴 때면 개발을 이끄는 쪽에선 여지없이 보상금을 끌어들인다. 보상 액수를 더 올리기 위한 불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폄훼다. 원주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발논리는 결국 원주민의 삶터에서 원주민을 몰아낸다.

뉴타운 자리에서 대부분 농업을 기반으로 삶을 살던 이들의 사연이 줄을 잇는다. 누구는 빚에 쪼들리면서도 멋들어진 몇 층짜리 주택의 건물주란다. 보상금을 둘러싼 형제간, 부자간 소송전의 주인공도 있다. 누구는 타향살이를 하다 뉴타운의 새 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뉴타운은 오늘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덩치를 불린다. 원주민들의 서글픈 사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나무 우거진 숲이 겹겹이 둘러싼 작은 마을 송림(松林)은 부친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다. 소나무는 푸른 솔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노란 꽃가루를 터뜨리며 존재를 드러낸다. 그 많은 소나무들과 송림은 언제까지 개발압력을 버텨 낼 수 있을까. 그저 견뎌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금미 기획취재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http://www.joongbo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갤러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