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이 주연한 영화 모던 타임스(1936)에서 이미 산업의 기계화(機械化)가 인간사회에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예견하였습니다.

주인공은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물건이 지나가는 속도에 따라 작업하는 손길이 느리게도 또는 빠르게도 움직이게 됩니다.

기계에 의해 사람이 조종당하는 모습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초기단계였지만 미래 세계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개념은 사전적 의미의 공업기술, 과학기술이라는 단순한 해석으로는 그 적용 범주가 너무 넓고 다양합니다. 인간사회와 생활의 세세한 곳까지 응용되는 기술문명의 총칭이 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재무 관리에 대한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재테크(財tech)’라 하고, 시간의 효율적 관리도 ‘시테크(時tech)’라고 하고 공원도 테크노 파크, 상가도 테크노 마트라고 하는 등 Technology의 tech는 접두사, 접미사로 두루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테크놀로지의 시작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편익을 위하고 발전과 행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테크놀로지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그로 인해 모두가 똑똑해졌습니다.

이젠 전화기도 ‘스마트 폰(Smart phone)’, 집도 스마트 하우스(Smart house), 폭탄도 스마트 폭탄이라고 합니다.

이 테크놀로지는 올림픽에서도 그 진가(眞價)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폐회식에서 식전행사의 아름다운 프로그램은 테크놀로지를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인들을 감동케 하기도 합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관측은 물론 각 나라의 정보수집도 지구 밖을 돌고 있는 인공위성에 의해 수집되고 제공되고 있습니다.

비행기, 선박, 자동차 길 안내도 내비게이션이란 자동 항법 장치도 실시간으로 위성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수신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GPS는 심지어 철새들이나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살고 있는 동물들 그리고 보존가치가 있는 동물들에게도 통신장치를 부착하여 관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도 3만 6천년에 1초의 오차가 발생할 정도의 정밀도를 GPS에서 제공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첨단 무기는 전쟁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자국 땅에서 상대방 전쟁국가에 미사일을 1cm의 오차 범위 안에서 공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질병도 사람의 피 한 방울이면 수백종의 신체 상황을 체크하고 첨단 장비로 환자의 질병을 밝혀내고 상상을 넘는 임상 데이터를 저장하여 처방을 하고 치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법칙을 인위적으로 변형, 변종, 번식, 육성, 가공 등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을 거슬러 침략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물질을 제조하고 관리하고 유통하는 단계에서는 로봇이라는 기계 기술의 담당자가 제어하고 조정하고 원자, 분자, 나노의 단위로 계산의 범주를 떠난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체의 기관과 조직은 물론 생체의 리듬과 몸에서 내보내는 신호음까지 분석이 되어 사람의 존재를 과학 기술의 실험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람을 위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테크놀로지의 산물들이 사람을 가두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테크놀로지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소외계층이 탄생되고 체온 없는 소통의 세계로 인간사회가 메말라져 가고 있습니다.

인격 없는 AI에 의해 앞으로 어떤 상황이 인간에게 충격을 줄지 아무도 모릅니다. 앞으로 인간을 대신할 AI로봇들이 올림픽도, 음악회도, 미술세계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여 인간을 종속시킬지도 모르고 전쟁도 로봇병사들이 대신할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말기적 증세가 비인간화를 재촉하는데다 정치나 사회조직의 권력 행사도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에 의존하는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기계기술의 부품처럼 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AI 로봇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이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기계 기술에 굴복하여 개인의 삶이 황폐하게 되어가고 있는데 감옥을 감옥인 줄 모르고 테크놀로지의 감옥에 살고 있는 것이 이미 오래 되었고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유화웅 시인·수필가, (사)굿파트너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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