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한국 현대사의 오랜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별세했다. 비록 그는 떠났고 생전 정치활동에 대한 공(供)과 과(過)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영욕과 부침을 거듭하며 한국 정치사에 그가 남긴 발자취는 몇 세대가 지나가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정치는 잘하면 국민이 그 열매를 따먹지만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이다.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지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면 교도소 밖에 갈 데가 없다”던 고인의 어록이 아직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실현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넓게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나고 졌던 국가를, 좁게는 국가를 이루는 세포인 ‘조직’의 생명력을 고찰해본다. 조직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성된 질서 있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무형의 존재로 시작하지만 고유한 핵심가치를 가지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그리고 생명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설립이념과 설립자의 정신을 수호해야 한다. 조직이 추구하는 핵심가치에 합당한 사람에게 포상을 하고 조직을 태동시키거나 혁혁한 공이 있는 자에게 ‘명예’의 칭호를 붙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

2011년, 사회복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은 단연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제정과 공제회 설립이다. 이 법과 조직은 사회복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였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 봉사하는 사람은 처우개선 및 지위 향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에 대한 반기였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결정 및 집행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국가에 있으며, 사회복지종사자의 처우 역시 국가의 결정에 좌우된다. 그러나 종사자들의 보수나 처우개선에 대해 정부나 시설의 적극적인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예산은 복지대상자에게 우선해야 하고 복지직 종사자는 직업인이기 보다 봉사자 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공제회(Mutual Aid 또는 Credit Union)라는 조직은 상호부조를 위해 회원이 출자금을 내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하는 단체로써 단기적으로는 종사자의 처우개선에 기여하며, 장기적으로는 종사자의 실질소득을 증가시켜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앞서 만들어진 교직원 공제회, 군인 공제회, 경찰 공제회 또한 회원의 직업군이 다를 뿐 만들어진 취지나 배경은 일맥상통하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이 있지만 주식회사처럼 주인이 없는 조직은 성장의 동력을 갖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법이나 예산 등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비영리법인은 더더욱 그 가치를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비영리조직의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요건을 법률, 재정(시드머니), 인력(회원대상자 수), 운용시스템, 사회적지지로 볼 때 사회복지공제회는 비록 여타 공제회보다 재정이나 법률지원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회원 대상자가 많고 공익사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대상자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였다. 특히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및 시스템 간소화로 인한 비용 절감이 큰 몫을 하였다.

필자는 얼마 전 자녀를 낳고 키울 때보다 더 고되었던 조직에서 임기를 다하고 물러났다. 100만 사회복지실천가 중 한 사람으로 돌아와 바라는 것은 한 가지, ‘행복한 사회복지실천가가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는 조직의 설립정신이 잊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의 많은 사회복지 실천가들이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과 조직의 열매를 열심히 따먹을 수 있기를…….

‘정치는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웃어본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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