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7기 임기가 시작됐다. 압승이자 완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소속 경기도 단체장들은 당선 직후 하나같이 “시민의 승리다. 시민만 바라보겠다. 시민의 명령을 받들겠다” 등의 소감을 피력했다. 당선 소감만 들으면 단체장들이 이번 선거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촛불의 힘이 보수를 무너뜨렸다. 진보와 보수는 수평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보수 괴멸’을 몰고 왔다. 경기도 시장·군수 31명 중 29명이 민주당이다. 경기도 권력이 민주당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와 보수의 정치이념에 따른 선거가 아니었다. 정책선거나 인물선거는 더더욱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실력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반사이익을 가져온 것이다. 정당공천의 여러 문제는 논외로 하고,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게임 끝나는 선거였다. 후보의 자질도 역량도 검증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민주당이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렵다”고 했다. 국민의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임기를 시작한 자치단체장들은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시민들은 시정의 주인이 자신들이고, 단체장은 한낱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시민의 눈높이는 매우 높아졌다. 그저 정치나 공직을 생계 수단이나 사익 실현의 도구로 인식하는 단체장을 식별할 줄 알 만큼 성장했다.

선거는 끝났고, 말들의 잔치도 끝났다. 새 임기를 시작한 경기도 단체장들은 유념해야 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자는 유권자 사이의 운동이 있었을 정도로 이번 선거는 덜 싫은 정당을 뽑게 된 정말 어려운 선거였다.

지방자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일부 단체장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벤자민 바버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의 고견을 인용해 임기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은 원칙을 말하지만 시장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명언이다. 자치단체장은 시민 삶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행동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단체장은 지역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실용주의자이자 문제해결자가 돼 지역주민의 이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기를 시작한 단체장들은 당장 지금부터 할 일이 있다. 현안을 해결하고 과감한 정책을 수립·시행해 시민의 삶의 질을 시민의 피부에 와 닿도록 개선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지역내 커뮤니티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주민자치를 강화하고, 구도심 주차난을 해결하고, 교통사고가 빈번한 곳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일을 통해 시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공약도 차근차근 이행해야 한다. 공약은 곧 민주주의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포퓰리즘이 가져올 재앙을 알고 있다. 실현 가능한 공약, 진정 시민들의 삶을 위한 공약을 면밀히 검토해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시정 운영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선거 이후 누굴 뽑았는지를 기억하기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혈세를 손에 쥔 단체장들이 4년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4년 후에 평가받게 된다. 적당한 실적과 연출용 사진들로 선거 공보물을 채우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6·13 지방선거에서 “찍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며 어려운 투표를 경험한 유권자들은 또 한번 성숙했다. 이번 선거의 반작용으로 정당 공천의 문제가 개선되고 정책 선거, 인물 선거로 선거문화는 바뀌어 갈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진정성 있는 자치단체장을 원한다.

단체장들은 스스로 성찰하고 시민을 위한 정치적 노력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싸늘히 식어버린 시민의 눈에 진정성이 결여된 행보는 술수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만연한 과거의 관행에 얽매여 주민들을 기만하고 외면하는 단체장에게 다음은 없다. 시민들은 매의 눈으로 시정을 바라볼 것이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소명(calling)을 갖고 뛰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투표를 한 시민의 요구다.

박현정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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