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회담들 이후로 남북간의 교류에 대한 구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경의축으로는 경제통일 특구에 대한 의제가 이슈가 되고 있고, 평양까지 자동차 전용국도를 구상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강원도 쪽으로는 고성에서 원산까지 자동차 전용도로를 구상하고 있으며 철도를 통해 경의축과 경원축도 연결하고 러시아와 중국까지 도달하자는 논의도 활발한 상황이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개발에 소외되어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치적 분위기에 많이 기대를 거는 모습이고 정부도 이에 화답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남북간 도시기반시설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단절되었던 국토를 다시 연결하고 개발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기에 앞서 어딘가 순서가 틀린 느낌이 있다. 이른바 인문, 사회, 역사를 지역과 공간과 연결한 학문의 축적이 그것이다. 개발은 해야 하겠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해당지역의 과거 역사는 어떠한지 통일의 전초기지이자 통일 이후의 남북교류의 주요 무대가 되는 경의축과 경원축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국토의 효율성만을 두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방식은 한정된 재원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한반도의 허리가 될 경기도 접경지역에 대한 여러 가지 기성학문 분야(지리학, 역사학, 도시계획학, 건축학, 인류학 등)의 연구를 축적하고 지역의 통시적(通時的) 의미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 대한 성찰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통일을 대비한 미래를 올바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순서이다. 아무리 조그만 골목길을 재개발을 하거나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할 때에도 향수와 추억이 어린 골목길에 대한 역사 기록은 필수적으로 하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통일의 주 무대가 될 지역에 대한 역사기록 축적 및 전통성 회복에 대한 연구가 너무 미진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교류에 관한 물리적 개발이 벌어질 지역에서는 각 지역마다의 이해관계가 다르게 얽혀 있기 때문에 지역간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이미 경기도 북쪽에서의 교외선이나 7호선 포천 연장문제, GTX 노선 결정, 통일특구의 위치 및 우선순위 결정, 반환공여구역의 개발방향 설정, 테크노밸리 개발 등에 있어서 지역간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목격하여 왔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축적할 수 있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 지역 갈등을 해결하는 완벽한 수단은 될 수 없지만, 개발의 순위를 결정할 때 역사와 인문·지리학적 관점에서 논리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역갈등의 설득 수단으로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다. 하나의 국책 과제애 대한 지역간 콘센서스(consensus)를 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복원하여 문화관광 측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이른바 신택리지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현재 사업들은 기초 지자체 단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엽적이고 편향적인 연구가 될 위험이 있다. 경기도나 국가에서 나서서 경원축과 경의축의 역사, 지리, 문화 관련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 평화로 정비방안, 한탄강, 임진강 및 의주로 등 통일관련 걷는 길 정비 방안 등이 진행되고 있는 점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길이 있는 곳은 곧 물이 흘러가던 곳이고, 물이 흘러가던 곳은 결국 수천 년 한국의 역사가 숨 쉬던 곳이라는 점에서 길과 관련된 역사적 복원 및 정비 사업은 신택리지 사업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도시개발에 앞서 이러한 사업이 빠른 시일 내에 활성화 되고 일반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어 정말 합리적이고 맥락에 맞는 남북 교류를 위한 기반시설 조성사업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이훈 신한대 대학원 도시기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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