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여고생 살인사건의 여파가 아직까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원래 성범죄 발생률은 오뉴월에 극심히 증가하다가, 찬바람 불면 잦아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년도 다르지 않아서 경찰서마다 성범죄 관련 업무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13세에서 18세 사이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는 지난 삼십년 동안 가장 가파르게 증가한 유형이다.

왜 여전히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가? 범죄심리학자인 필자도 전문서적을 보고 어렴풋이 그 이유에 대해 짐작하기는 하지만, 마음속 깊이는 아직도 공감이 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소아성기호증이 어린아이를 성적(性的)인 대상으로 파악하여 집착하는 병적인 증상이란 것을 알고는 있으나, 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성적인 자극을 느끼는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방어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노리는 어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영학도 강진 사건의 피의자도 수면유도제까지 먹여 아이들을 도착적 욕망의 노리개로 삼았다. 시신을 은닉하고 증거물을 없애면 쥐도 새도 모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 피해자가 살아 있더라도 피해자의 거절이 없었음을 주장하면 화간(和姦)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 이런 것들이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킨다. 처벌의 수위 역시 높지 않아서 술을 마셔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생전 처음 해 본 실수라는 등의 변명까지 통하게 되면, 그야말로 아동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란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과업이 된다.

이러다보니 서구사회에서는 의제강간의 연령을 비교적 높이 설정하여 무조건 아이들에게 손을 대면 패가망신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의제강간 연령, 즉 합의가 있는 성관계를 맺더라도 행위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연령을, 우리는 13세 미만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미국,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은 16세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16세 미만의 아이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금지된 사항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들 나라는 더욱이 강간죄의 범위를 폭력이나 협박의 유무로 따지지 않고 상대방의 동의를 구했느냐로 따지기 때문에, 성행위를 하려는 자는 상대방인 아동에게 자신이 저지를 일을 미리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16세 이상의 연령이라도 일어날 일에 대한 정확한 예견을 갖지 못하였다면 강간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영학은 14세의 어린 아동을, 강진 사건은 16세의 여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꼭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아니라도 채팅앱만 클릭하면 수많은 여자 아이들의 성을 사겠다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이러고도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기를 기대한다면 언어도단(言語道斷) 이다. 이참에 의제강간 연령이라도 높여 애당초 아이들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는 규범을 보다 공고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