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시장'은 가상인물임을 미리 밝힌다. 지난주 민선 7기 단체장들이 일제히 취임했다. 광역단체장을 포함해 전국 243명 중 160명이 초선으로 당선됐다. 경기·인천에서도 33명이 새롭게 자리를 맡았다. A시장도 그 중에 한명이다. 처음 공직을 맡은 만큼 잘해보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취임식도 생략하고 관사와 청사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탈권위 소통행정’의 굳은 각오도 다졌다.

근무 일주일째,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융숭한 대접’에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딜 가나 따라붙는 수행비서가 차를 대기하고 문을 열고 닫아 준다.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의자를 빼주고, 옷을 받아 준다. 각종 행사 때 맨 앞 줄 중앙에 앉고 거창하게 소개를 받는다. 비서관이 시간마다 스케줄을 체크해서 알려주고 홍보담당관이 플래시 팡팡 터트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진을 찍어준다. 이른바 의전(儀典)이다.

 처음에는 됐다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사양했다. 하지만 받을수록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복잡한 현안도 일일이 찾아 볼 필요가 없다. 공무원이 유창하게 브리핑 해주는 프레젠테이션으로 대신할 수 있다. 굳이 본인이 알아야 하고 직접 부딪칠 필요가 없다. 그냥 올려주는 결재서류에 사인해주고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엊그제는 지역 상공인들과 첫 상견례를 가졌다. 각종 인허가권자인 만큼 관내 유지들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은근슬쩍 비위를 맞춘다.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게 실감난다.

다소 과장된 설정이다. 요즘은 이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고위공직자 하면 권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정해진 사람을 만나, 사전에 협의된 대로 형식적인 대화와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 등이다. 소통(疏通)과 통찰(洞察)의 단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행정 속에서 창의적인 업무가 이뤄지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아이가 자랄 때도 부모가 다 해주면 스스로 해내는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대는 마마보이가 되기 십상이다. 정치 리더도 마찬가지다. 찾아주는 것만 보고, 써주는 대로만 읽고, 권하는 것만 받아보는 소아적 리더십으로 얼마나 시민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겠나.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주민들을 안정시키고 발 빠른 수습책을 내놓을 준비된 리더십이 얼마나 되겠나.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건 짜여진 수순에 없고, 연습도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서투른 위기대처 모습을 심심찮게 보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공직 사회의 잘못된 관행도 이 참에 바뀌어야 한다. ‘정책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해도 의전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업무 능력보다 윗사람 코드 맞추기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자연히 얼마나 납작 엎드리나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조직사회의 특성상 바뀌기 쉽지않다. 윗사람이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시민들이 이번에 기회를 준 것은 일을 제대로 한번 해보라는 뜻이다. 과잉 의전에 기댄 어설픈 상류사회 코스프레는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한다. 정제된 보고와 답변, 정해진 대로 이뤄지는 형식적인 소통은 굳이 단체장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지방자치시대에 단체장은 지역의 화합과 발전을 이끄는 최일선의 선봉장 역할을 해야 한다. 잠깐 사진 찍고 이동하는 겉치레 방문이 아닌 일상처럼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또한 지역의 특색있는 성장·발전 모델을 찾아내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아시아의 이름 없는 아이돌 방탄소년단은 SNS와 유튜브를 활용해 빌보드 탑에 오른 세계적인 그룹이 됐다. 내 지역의 문화와 특산품, 투자 장점 등을 알릴 글로벌 세일즈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꼭 대규모 시장개척단 이끌고 해외 방문해서 정해진 기업인들 만나고 돌아오는 산업화시대의 방법만 답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창의적인 행정능력 발휘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이 밖에도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친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단체장 밑에 코드 맞추기나 하며 적당히 비비는 아랫사람은 없다. 그저 그렇게 정해진 일만하는 ‘아바타 시장’으로 머물다 갈지, 내 지역의 발전을 제대로 이끌어낼지는 오직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A시장의 건투를 빈다.

민병수/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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