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망하자 이를 슬퍼하면서 읊은 시 몇 편이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 업네/어즈버 태편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 시는 고려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와 목은(牧隱) 이색과 함께 삼은(三隱)의 한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는 야은(冶隱) 길재의 시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더라.”

고려가 망하자 강원도 원주에 숨어 나라의 부름에도 꿈쩍하지 않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이 읊은 시다.

야은이나 운곡이나 하나 같이 고려가 망한 후 홀로 500년의 도읍지였던 개성에 들러 잡초로 뒤덮여 흔적도 없는 옛 궁성터를 보면서 옛 생각에 눈물 흘리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을 심정으로 일제에 빼앗겨 잃어버린 조국강산을 개성에 빗대어 노래 부른 사람도 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스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성은 허무러저 빈터인데 방초만 풀으러/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이 노래 하나로 이애리수라는 가수는 ‘민족의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황성 옛 터나 시조에 나오는 만월대는 하나다. 만월대가 황성 옛 터요 황성 옛 터가 만월대다. 그 옛 터가 추초로 뒤덮여 있거나 방초만 푸르게 우거져 있는 것도 500년 전이나 1천년 전이나 시간적 간극에도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금 또한 같다. 다만 7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비록 방초로 우거져 빈터뿐이지만 그 만월대를 찾아가 볼 수 있었으나 이제 남쪽 사람들은 가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남북 역사학자협의회에서는 벌써 2007년 이후 9년간 7차례에 걸쳐 만월대지역을 대상으로 남북 공동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다. 연평도 사태와 같은 남북관계의 악화로 2010년에 잠시 발굴작업이 중단 된 적도 있었으나 그동안 3천5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한 바 있었다. 드디어 2015년 11월 30일에는 2014년 이래 6개월에 걸친 7차발굴 작업과정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전일할 전)으로 추정되는 글자를 발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만월대는 고려태조 2년 서기 919년에 창건되었으나 거란의 침입이나 이자겸의 난으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 시점으로부터 계산해도 청주에서 찍은 활자‘直指’(직지)보다는 17년이나 앞선 활자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발굴은 여간한 쾌거가 아니다.

지난 2015년 12월 1일 국회의 한 회의실에서는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남북역사문화 교류’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과 역사학자들이 모여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군사분계선에 의해 양분되어 있는 궁예도성을 제2의 만월대로 활용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궁예가 개성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서 지은 도성 얘기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남북역사학자 협의회가 앞장서서 DMZ내의 문화재 발굴사업을 년차적으로 서둘러 시작했으면 한다.

그런데 마침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 안보 전략연구원과 서울대 국제문제 연구소가 ‘4차산업혁명시대의 신안보(emerging security)’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이들 전문가들이 설정한 신안보라는 것은 군사적 의미의 안보가 아니라 비군사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의 것들을 총망라 하였다. 예를 들면 사이버 테러같은 과학 기술 분야와 미세먼지나 에너지, 식량, 보건과 같은 자연환경분야 그리고 자연재해나 이주 난민문제 또는 경제위기같은 문제를 중심으로 남북이 협의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차산업 시대에 이르러 이 문제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순식간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어서 국가간 또는 국제적인 협력네트워크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방치하면 그 영향은 곧바로 남북 모두에게 재앙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남북간의 긴밀한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미래를 위한 사전대비는 언제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남북 간의 협의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 나간다면 북핵문제 해결 못지않은 쾌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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