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한 임진강(臨津江)은 한강(漢江)의 제1지류로 길이 275km, 유역면적 8천135㎢의 강이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천8㎢, 북한지역이 5천108.8㎢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과 평안천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임진강은 선사시대로부터 한반도 인류의 태동지다. 강을 끼고 펼쳐진 너른 평야와 완만한 구릉지는 선사인들이 살아가기에 최적지였다.연천 전곡리 구석기유적지를 비롯해 파주 적성의 주월리·가월리, 파평 금파리 구석기유적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임진강을 끼고 파주 월롱 덕은리와 교하 다율리, 당하리에 집중되어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은 한수이북지역에서 강화도 다음으로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고대국가 시기에는 삼국간 영토분쟁의 마지노선으로 임진강이 경계를 이루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여 한강 이남까지 진출할때도 임진강을 건넜다.

신라 김유신 장군은 임진강을 건너며 통일의 위대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삼국통일로 실현됐고 임진강은 경계의 강에서 대동(大同)의 강이 되었다.

임진강변 칠중성에 오르면 지금도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려, 조선 1천년의 역사속에서 임진강은 남북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고려의 수도 개경과 조선의 수도 한양을 잇는 길목에 임진강은 뱃길을 내주었다. 조선 제1대로인 의주길은 중국과 조선을 잇는 연행길이며 무역의 길이기도 했다.

이 길의 유일한 뱃길인 임진나루터는 국내외 여행객들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선조가 의주파천때도 임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 수 많은 정치가, 학자, 시인, 묵객들이 임진강을 건너며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다.

임진강을 노래한 문학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임진강을 예찬하고 있다.

임진강은 조선의 대표적 학자인 율곡 선생을 배출했고 명재상 방촌 황희 정승이 영원히 잠든 곳이기도 하다.

근현대에 들어 임진강은 또 다시 통한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흐른다. 그 상처들은 붉은 적벽에 피로 맺혀 있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리움만이 강물에 던져진다.남북을 갈라놓은 6·25 전쟁은 임진강을 고대국가 시기 경계의 강으로 되돌려 버렸다. 강물은 여전히 남북을 소통하지만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통로는 모두가 차단되어 버렸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임진강에는 새로운 평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임진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의 날갯짓이 더욱 힘차다.

임진강 너머 판문점에서 펼쳐진 남북 정상간의 만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분단 70년의 세월을 인내하고 통일을 갈망했던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임진강 전체 길이 중 파주를 흐르는 강은 약 75km다. 파주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한강을 교하(交河)가 되고 서해로 나아간다.

임진강과 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 교하는 조선 광해군때 교하천도론이 일었던 곳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했던 곳 임진강. 환포형국(環抱形局)의 국운풍수 명당지로 ‘천도’가 거론됐던 곳 임진강. 임진강은 한반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오늘도 흐른다. 남과 북이 서로 갈라져 갈등하다 다시 대동(大同)할 역사의 흐름을 예고하는 듯 하다.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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