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할 죄인의 형 집행을 미루고 수갑을 채워 옥에 가뒀다면, 죄인이나 가족들 마음엔 천만 다행일 것이다. 꼭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았을 뿐더러 구명할 시간도 벌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갑골문 幸(다행 행)자는 구멍 2개의 위아래에 자물쇠가 달린 수갑모양이다. 수갑을 채운 상태인지 풀린 상태인지 의견이 갈리지만, 執(잡을 집)자가 수갑 차고 꿇어앉은 사람이니 幸(행)은 아마도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이 수갑 찬 글자 幸(행)을 오늘날 행운처럼 해석하니, 필자는 이 죄수를 사형에 처해질 사람이라 한 것이다. 다행이니까. 그래서 ‘다행(多幸)’이란 말 앞에는 ‘그나마’라는 관형어를 붙여 ‘최소한’을 강조한다.

한자 祝(빌 축)의 오른편 兄(맏 형)은 본래 제사장으로, 벌린 입(口, 입 구)이 강조된 사람(人, 사람 인)이다.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제사장이다. 示(보일 시)는 제단인데, T자형 제단과 그 위에 어른거리는 혼령(一)의 모습이다. 그래서 ‘祝’(축)은 제단이나 신령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제사장으로 ‘기도하다, 빌다’를 뜻한다. 축문(祝文)이라는 말에서 기도의 뜻이 명확히 드러난다. 갑골문의 福(복 복)은 제단(示, 보일 시)에 술병 또는 술독(畐, 가득할 복)을 더한 것이다. 福(복)의 본래 의미는 신령에게 바쳐진 술단지이다. 공물이면서 치성이다.

행(幸)은 죽지 않고 살게 돼 좋은 운이다. 축(祝)은 신령 앞에 말로써 비는 것이며, 복(福) 역시 신령에게 드리는 정성이었다. 한자의 본래 뜻을 살피니, 행복(幸福)은 뜻밖에 매우 소박하여 ‘다만 최악을 면하였으므로’ 좋은 것이다. 축(祝)과 복(福)은 둘 다 절대자에게 드리는 나의 간구요 치성이다. 오늘날 쓰이는 의미에서의 ‘복’을 내가 받았으면 좋겠으나, 그러기 위해 먼저 신령이나 남에게 여쭙거나 받들어 올리는 전치절차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근래 자주 쓰이는 말 ‘복 많이 지으세요’는 썩 좋은 표현이다. 거의 행운(幸運, good luck)처럼 쓰이는 말, ‘복’은 그것이 덕처럼 차곡차곡 쌓거나 짓는 것이라서, 남이 받으라 했다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축(祝)이나 복(福)이 내게 주어졌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기도나 희생에 대한 갚음이다. 반면 행(幸)이나 운(運)은 그러한 노력 없이 얻거나 바라는 요행이므로, 축복과 행운의 격은 꽤 다르다. 그러므로 축과 복이 적덕이나 기도 같은 노력 없이 주어졌다면, 그 축복은 어쩌다 생긴 행운과 다를 바 없겠다. 그래서 ‘luck’는 우리말로 ‘행운’보다 ‘운’에 더 가까우며, 이 운은 ‘good luck’(다행, 행운)과 ‘bad luck’(불행, 불운)을 모두 포괄한다.

너도 나도 쉽게 축복을 건네고 행운도 빈다. 그러한 축복과 행운의 기도가 고맙기는 하지만 반드시 좋은 운수와 결과를 얻지는 못 한다. 결국 남의 애씀과 기도가 있더라도 나의 노력 없이 축복이 주어질 리 없다. 축복은 자신이 여축한 것을 스스로 갖다 쓰는 것이다. 행운은 다만 재수 좋아 걸린 요행일 뿐이요, 그러므로 행운만큼의 불행도 함께 할 것이다. 이 모두 스스로 짓기 나름이다. 신령에게 기도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부지런히 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한자를 보니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 있었다. 가족관계와 사회생활, 건강과 취미 같은 일상에서 얻는 즐거움과 만족이 중요하다. 괴롭거나 슬픈 일이 있고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맑고 밝은 긍정적 감정을 애써 부양해 즐거워해야겠다.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이 모두 마음이다. 자족할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살짝 낮추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홍보센터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