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잔뜩 찌푸린 채 몸부림치듯 비가 내렸다. 덕분에 잠시 비가 그친 후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았다. 늘 희뿌옇던 시야 속에서 어렴풋한 능선 밖에 보이지 않던 뒷산이 코앞에 다가선 듯한 당혹스러움. 비록 찌는 듯한 무더위이건만 미세먼지 걱정을 잊고 잠시나마 심호흡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미세먼지는 발생 원인은 물론 화학적 성분부터 황사와는 완전히 다르다. 황사는 기본적으로 규소산화물, 그러니까 모래 가루다. 요즘 중국으로부터 묻어오는 유해물질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동북아 지역이 산업화되기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한편 미세먼지는 탄소 계열 화합물에 질소 및 황산화물이 수분과 엉겨 붙은, 그야말로 ‘공해 덩어리’다.

인구 과밀과 대량 소비는 공기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인구가 매일 내놓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는 대부분 재활용이 어렵다. 매립이나 소각밖엔 답이 없지만 묻는다고 썩지도, 태운다고 완전히 분해되지도 않으니 이마저 미세먼지를 더하는 원인이 된다. 쓰레기뿐이랴. 꽉 막힌 도로는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어린이와 노인 등 이른바 ‘교통 약자’는 미세먼지를 듬뿍 마시며 잔뜩 달구어진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뀔까 숨을 헐떡거려야 한다.

그들은 엄연한 유권자들이요 납세자들이며 정당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고급 빌라에 공기청정기를 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살아간다. 나날이 일자리는 줄어들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약속과 정책보고서들이 쌓이고 해마다 그럴 듯한 사업으로 예산이 소진되고 있는데... 느리더라도 과연 개선은 되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의 난제들은 관련 세부 분야들의 전문가들을 모아 회의를 하거나 기업들에게 돈을 걸고 입찰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융합이라는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책에 접근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 난제들은 정치사회적 모순들과 얽혀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첨단 과학기술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줄 수 있다.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자본의 증식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올 때 문제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융합 과학기술’이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다.

자율주행차 없이 미래 교통을 말할 수 없고 스마트 팜 없이 미래 농업을 말하기 어렵다. BT와 IT 결합 없이 미래 의료를 말하기 어렵고 사물인터넷(IoT) 없는 사무실, 학교, 요양원을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미래 사회의 석유는 데이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일상에서 막대한 양의 공공 데이터가 생산되고 있다. 그 안에 미래의 기회가 잉태되어 있건만 속절없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다. 과학기술 역량이 투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을 공공 수요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수익성과 시장 규모를 분석하면 불확실성이 너무 크고 초기 연구개발 투자 비용에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 여부까지 고려하면 대부분 불가능하다. 공공의 연구개발 역량이 투입되어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걷어내야 민간 기업이 들어올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말잔치 서류잔치다. 지자체가 특히 그렇다. 무수한 사업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된 것도 없고 안 된 것도 없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며 미루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실력은 쌓지 않고 성적만 기대했다. 정책 수립자든 집행자든 직접 연구개발을 해봤어야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감이라도 잡을 텐데, 일하는 사람은 없고 옥상옥 관리감독자만 있다. 지역 과학기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지역 과학기술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자체 예산은 물론이고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준다고 해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 워싱턴 DC는 민간에서 들어온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실리콘밸리의 산호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정부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도 공무원이 아니라 외부 연구개발 전문가를 책임자로 영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실질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갖춘 이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예산 낭비를 막는 첫걸음이다. 실은 상식에 가까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경기도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납세자들에겐 말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 양복이 아니라 작업복을 입은 공복(公僕)이 필요하다.


정택동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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