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예총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무용협회지부장이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춤 공연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요청이 있었다. 평생 글을 쓰며 글쟁이로만 살아왔던 터라 장르가 다른 무용의 심오한 세계를 알 수 있을까 싶었지만 거절 할 수 없어 따라 갔던 적이 있다. 예술의 세계는 폭이 넓다. 어느 한 장르를 콕 집어서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 무용, 국악, 미술, 연극, 영화, 사진, 음악,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표현해 내는 방법들이 다양해서 작가들은 글로, 화가들은 그림으로, 무용하는 예술가는 몸짓으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본인의 예술 세계를 펼친다. 뿐만 아니라 예술세계의 분야도 더 폭넓게 확장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우면당의 객석은 350석으로 고양문화재단의 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이나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의 규모다. 아담한 규모에 가변형 무대로 객석과 무대가 일직선상에 아주 가깝게 배치시킨 것은 무대 위의 무용수와 관객을 하나로 묶어주기 위함이다. 조명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소복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희미한 음악이 가까워지고 조명이 밝아지면서 나타난 여인은 놀랍게도 칠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무용수였다. 굳이 누구라고 밝힐 것까지야 없다. 관객의 한 사람인 내가 동화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춤사위에 빨려드는 세상을 보았다. 무대가 들썩이는 것을 보았다. 결국 객석의 관객들이 무대 속으로 빨려드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전기에 감전이라도 되는 듯 온몸에 소름이 오르고 닭살이 돋았다. 무용을 보면서 이렇게 빠져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채를 잡은 고수의 추임새에 북 모서리에서 툭, 불거져 나오는 짧고도 매서운 바람 소리도 들렸다. 그 무대는 뇌리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고 이후에 ‘귀뚜라미’(푸성귀 발전소. 문학의전당 2012)라는 시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은 후, 고양시교향악단이 탄생되고 창단공연이 아람음악당에서 있었다. 클래식음악에는 문외한이라 베토벤, 모차르트 등 음악가의 이름만 나와도 몸이 움츠려들곤 했다. 그날 공연의 백미는 역시 피아니스트 문지영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연주는 40여분을 긴장과 박진감이 교차되면서 이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처음이었다. 건반 위에서 물결치는 파도와 밀려와서 바위에 부딪히며 깨지는 저 찬란한 소리를 표현할 수가 없다. 바람이 만들어 내는 잔물결은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과 함께 몰아치는 폭풍은 바다를 통째로 삼키듯 광란했다. 순간 관객들은 숨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잦아드는 바람 그리고 귀 밑을 간지럽히는 속삭임까지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고 긴장시키다가 풀어주고, 울리다가 흥을 주며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눈을 감고 들려오는 저 피아노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눈을 뜨면 호수 위의 백조처럼 건반위에서 춤을 추며 들려주는 저 손가락의 현란한 움직임에 그만 내 몸이 굳어 버렸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 두 개를 보면서 혼을 빼앗겼다. 이렇듯 예술은 평평한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워준다. 특별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예술이면 어떠랴. 관심이 없는 장르면 또 어떠랴. 보고 듣고 느끼다보면 결국은 온통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박정구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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