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최씨 중시조인 성묵당 최입지의 묘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산35에 위치한다. 강릉최씨는 강릉김씨와 함께 오랜 세월 강릉을 대표하는 가문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많은 인물을 배출했고, 오늘날에도 정관계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후손들이 많다. 강릉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충무공 최필달의 경주계, 부마공 최문한의 강화계, 대경공 최흔봉의 완산계다. 이들은 시조가 다르므로 동성이지만 서로 혼인을 할 수 있다. 최입지는 최흔봉의 12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1년(127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라 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했으며 강릉부원군에 봉해졌다. 본관을 완산에서 강릉으로 바꾼 이유다.

최입지는 말년에 친몽세력들의 부패와 혼란한 정국을 멀리하고 지금의 강릉시 장현동 모산(105m) 자락에 은거하였다. 강릉에서는 ‘생거모산 사거성산’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는 모산에서 살고, 죽어서는 성산에 묻혀야 한다는 뜻이다. 모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붓끝처럼 생겼다 하여 문필봉,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하여 노적봉, 밥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 하여 밥봉,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모산봉이라고 불린다. 이 지역에서 많은 인재가 나오자, 이를 막기 위해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였던 한급은 모산 꼭대기를 세자 세치(약1m)를 깎아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역단체들이 2005년 옛 정기를 되찾겠다고 1m를 복원하기도 했다.

강릉 서쪽 대관령 자락의 성산은 예로부터 피난지로 알려졌다. 또한 명당이 많기로도 유명했다. 성산에 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집안의 가세를 측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강릉최씨가 강릉의 명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산에는 양택, 성산에는 음택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는 ‘구산지상오계지중(邱山之上五溪之中)’에 혈이 많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구산리 위쪽 다섯 골짜기가 있는 곳으로 구산리는 이곳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다.


금산리는 태조산인 백두대간 곤신봉(1천131m)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개 이 정도 거리면 산세가 험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곳은 험준한 산지도 아니고 평지도 아닌 그야말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지역이다. 언덕과 같이 나지막한 산이 연속으로 이어지며 백두대간의 험준한 기를 순하게 바꾸어 놓았다. 혈은 순한 곳에 맺는 것이 원칙이다.

묘 바로 뒤의 현무는 단아한 봉우리로 구성체로는 탐랑성이고, 물형으로는 정상이 약간 원형인 옥녀봉이다. 옥녀봉에서 서쪽을 향해 내려온 맥은 갈 지(之)자로 살짝 변화를 한 후 끝자락에 이르러 풍만한 혈장을 만들었다. 현무에서 혈장까지 이어진 맥을 입수룡이라고 하는데, 위쪽은 폭이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져 마치 옥녀의 풍만한 유방처럼 생겼다. 이 경우 젖꼭지인 유두 자리가 정혈인데 최입지와 부인인 경주최씨 쌍분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묘역이 개보수 되는 바람에 본래의 혈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뒤로 있는 다섯 기의 묘들은 기가 모이지 않고 지나가는 과룡처에 자리한 것들이다.

이곳의 형국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으로 유명하다. 금산리라는 지명이 여기서 유래하여 금산(琴山)이라 했다가, 나중에 강릉김씨들이 많이 산다하여 금산(金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호는 낮은 구릉으로 묘 앞까지 감싸주는데 그 모양을 거문고로 본 것이다. 앞의 안산인 정봉은 활처럼 생겼다. 활은 전시에는 장군이지만 평시에는 선비를 상징한다. 따라서 옥녀가 거문고를 앞에 놓고 준수한 선비와 정답게 마주 앉은 모습이다. 이를 구경이라도 하듯 왕제산, 오봉산, 제왕산 등 귀한 산들이 주변에 탁립해 있다.

최입지의 장남인 최안소는 평장사로 강릉군, 차남인 최안빈은 전리판서로 예성군, 삼남인 최안언은 예의판서를 역임하였다. 이후 여러 대에 걸쳐 평장사를 나왔고, 수백 년 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다. 오늘날 화장 일변도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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