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리왕 19년(42년) 3월 가락국의 작은 나라인 구야국 북쪽 구지봉(龜旨峰)에 하늘로부터 6개의 금란(金卵)이 내려왔다. 구야국은 정식 국왕이 존재하지 않고 촌장이 지배 하는 부족국가였다. 전체를 통솔하는 부족장도 없이 각 마을의 어른들이 오랫동안 내려오던 마을 예법으로 다스리는 정말 작은 촌락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그래서 이들은 변한(弁韓)의 나라들처럼 통솔력이 있는 부족장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러한 백성들의 염원 때문인지 어느날 하늘에서 신기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이 땅에서 왕이 되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가 너희들의 임금이 될 것이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 소리와 함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라는 명령도 들렸다.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었다. 하늘의 계시를 들은 각 촌장들은 가락국의 9간(干) 이하 수백 명이 김해의 구지봉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말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며 구지가(龜旨歌)를 열심히 불렀다.

거북이는 500년 이상을 산다는 신기한 동물이기에 바닷가에 살고 있는 김해 백성들은 거북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숭배했다. 그 거북이의 머리를 내어놓으라는 것은 다름아닌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마을 번성 의식이었다. 당시 거북이 머리는 남성들의 성기인 남근(男根)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북이 몸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거북이의 남근 신앙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를 통해 인구가 늘어, 보다 큰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김해 일대 구야국 백성들의 꿈이었다. 그들의 꿈을 하늘에서 실현시켜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구야국 백성들은 너무도 신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구지가는 신군(神君)을 맞이하려는 일종의 희망적인 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구지봉으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는 부족 백성들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노랫소리가 커지자 어느 날 하늘에서는 빛이 나더니 곧 보랏빛 동아줄이 내려와 땅에 닿았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안에 둥근 황금색 알 여섯 개가 들어있었다. 12일 후 이들 알에서 각각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깨어난 아이가 바로 ‘수로(首露)’였다. 촌장들은 그를 6가야 중 수도이자 영토가 넓은 가락국의 왕으로 추대해 그를 가락국의 왕으로 받들었고, 이후 나머지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됐다고 한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도 알에서 태어났고, 신라의 건국자인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났다. 알이란 것은 ‘둥근 것’이다. 둥근 것은 바로 태양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족은 예로부터 하늘을 숭배했고,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알이 임금의 탄생에 등장하게 됐다. 인간이 어떻게 알에서 태어날 수 있겠는가? 난생신화(卵生神話)는 어디까지나 국가 창업자의 신비로움을 강조하고 국가 건립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구야국의 촌장과 백성들 역시 자신들의 임금이 알에서 태어나길 바랐고, 고구려나 신라의 신화를 뛰어넘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색 알에서 지도자가 탄생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황금색은 황제의 색상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 번성을 상징하는 거북이 신앙과 황금색 알의 사상이 결합된 구지가는 우리나라 건국 신화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인천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고전문학 수업시간에 구지가의 거북이 머리를 남자의 성기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이 학생 성희롱에 해당 된다며 징계 절차를 밟아 논란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의 민원을 받아들여서 해당 교사를 교체했다고 하는데 그 교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징계 조치가 부당하다고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당시 수업에 참관하지 않은 사람들은 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정말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때문에 좀 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문학작품의 해석 한 부분을 가지고 성희롱으로 몰아간다면 앞으로 많은 고전 작품들의 해석에 있어 유사한 논쟁이 벌어질 것 같아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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